[미사와] 만우절 거짓말 2
농담이라고 해명할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정신을 차려보니 미유키는 사와무라와 사귀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미유키는 동성에게 고백받은건 처음이 아니라 크게 놀라지 않았지만, 사와무라에게는 미유키가 처음, 그러니까 첫사랑인 모양이었다. 풋풋하기도하지. 하지만 풋풋한 첫사랑이 귀엽다고해서 마냥 받아줄 생각은 아니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까. 이쪽은 나름 주장과 주전포수, 거기에 4번타자로서의 막중한 임무로 바쁘다고. 하지만 고백을 받았던 그 날, 사와무라의 웃던 얼굴이 자꾸 아른거려 차마 면전에 대고 '난 농담이었다.'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두달쯤 어울려주다가 이 웃기지도 않는 놀이를 끝낼 생각이었다. 어디까지나 그럴 생각이었는데.
파앙, 하고 옆에서 듣기만해도 기분좋은 소리가 났다. 미유키는 자기도 모르게 옆에 앉은 오노를 쳐다보고 말았다. 지금 오노와 배터리를 짜고 있는건 사와무라. 반대편에서 공을 던진 사와무라는 미유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씨익 웃으며 평소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 제 공 어때요!"
"요새 컨디션이 좋은데?"
오노가 공을 돌려주며 그렇게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요새 사와무라의 컨디션은 최고조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유키가 언제나 지적했던 밋밋한 코스도 꽤 날카로워졌고, 구속도 조금씩이긴했지만 꾸준히 늘어갔다. 날이 갈수록 좋아지는 사와무라의 컨디션과 가까워지는 대회 일자. 미유키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야구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했고, 실제로도 그럴 생각이었다.
"사와무라, 오노랑 연습 끝나면 내가 열 구정도 받아줄게."
"오옷, 왠일임까 미유키선배!"
"요새 컨디션 좋잖아? 팍팍 던져보라고."
그 말에 활짝 웃는 사와무라와 달리, 미유키의 반대편에서 공을 던지던 후루야는 뾰루퉁한 표정이 되었다. 그걸 보는 미유키는 즐거운 기분이 되었다.
미유키와 사와무라의 연애는 기본적으로 비밀 연애. 그것은 미유키가 제안했고, 사와무라 역시 동의한 바였다. 야구가 전제로 깔려있는 둘이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언제나처럼 연습을 하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개인 트레이닝. 거기에 약간의 연애 요소가 가미됐다. 방과 후에 연습 전까지 잠깐 이야기를 한다거나, 혹은 둘 말고는 아무도 오지않은 불펜에서 조심스레 손을 잡아본다거나. 그런 어린애 같은 장난에 오히려 미유키쪽에서 걱정이 될 정도였다. 사귀는 사이인데, 이래도 돼? 그 질문에 사와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도 나도, 야구가 먼저니까 괜찮슴다. 미유키는 그 말에 이 관계를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왠지 가슴 한쪽이 싸해지는걸 느꼈다. 왜였을까. 그 기분을 정의 할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하지만 당장 문제가 되는건 아니었으므로 미유키는 그것에 대한 생각은 잠시 뒤로 미뤄두었다.
"헤헷, 제 공에 놀라서 기절해도 몰라요!"
"안해 임마."
아 그래, 또 하나 달라진게 있다면 녀석의 눈빛. 공을 받아주지 않으면 잡아먹을 것 같이 달려들던 녀석의 눈빛이 조금 부드럽게 변했다. 다른 녀석이 보기엔 여전히 공을 받아달라 떼쓰는 평범한 사와무라겠지만, 미유키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사와무라는 변했다.
고백을 해서 마음을 전하고, 어린애 장난같은 연애로도 이렇게 사람을 바뀔 수도 있구나. 미트에 차례로 도착하는 공 하나하나가, 그런 사와무라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미유키는 왠지 부끄러워졌다.
"구속이 늘었네."
"정말요?"
불펜을 나오며 미유키가 그렇게 말해주자 사와무라는 눈에 띄게 기뻐했다. 신이 나서 마구 흔들어대는 강아지 꼬리가 눈에 보일 것만 같다. 사와무라는 배시시 웃더니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후루야와 오노는 아직 불펜, 카리바는 뒷 정리. 둘을 보고있는 시선이 없다는걸 확인한 사와무라가 미유키에게 말했다.
"저기 그럼, 칭찬해주십쇼!"
"어?"
"칭! 찬!"
그렇게 꾹꾹 눌러 말하지 않아도 의도는 잘 알겠는데 말야. 미유키는 순간 당황했다. 굳이 남의 시선이 없는걸 확인하고서 말하는걸 보니, 평소같이 어깨를 두들겨주거나 말로 때우는건 하면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인으로서? 뭘 해줘야 하는거지? 갑자기 난이도가 너무 높아진 탓에 어쩔줄 몰라하는 미유키를보며 사와무라가 짓궃게 웃었다.
"머리 쓰다듬어 주세요."
"엥?"
착한 일 한 아이를 칭찬해 주는것도 아니고. 미유키는 사와무라의 말에 일단 팔을 들었지만, 금방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다. 허공에서 움찔움찔 하기를 두어번. 결국 미유키의 손바닥은 재촉에 못이겨 조심스럽게 사와무라의 정수리에 내려앉았다.
"...어."
손바닥에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미유키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분명 그 나이대의 남자아이 답게 거칠거칠 할 줄 알았는데, 사와무라의 머리카락은 의외로 몹시 부들부들했다. 얼마나 감촉이 좋았는지, 미유키는 자기도 모르게 두어번 더 사와무라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다. 말 없이 쓰다듬는 미유키의 손길에 사와무라는 꽤나 기분 좋은 듯 키득키득 웃었다.
"이대로면 에이스도 문제 없을것 같죠?"
"문제 없을지도."
"오, 미유키 선배 오늘 왠지 후한데요? 공도 받아주고, 칭찬도 해주고."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미유키는 한번 더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씨익 웃었다. 그래, 네 컨디션이 계속 이렇게 좋기만 한다면 애인놀이든, 칭찬이든 얼마든지 더 해줄 수 있으니까. 미유키는 그대로 사와무라의 손을 잡고,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