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역전재판

[쿄오도] 잊어버리다. 4

르체 2016. 3. 26. 00:35



"내가 너와… 형을?"
"그래요. 서류를 다 읽어보지는 않았나봐요. 거기에 다 나와있었을텐데."
"자세히는 보지 않았어."

 그렇게말하며 쿄우야씨는 서류로 시선을 떨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치 내가 악역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쿄우야씨를 괴롭히는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진실은 진실. 언젠가는 알게 될 사실이다. 그럴 거였다면 누군가에게 전해 듣는 것보다 나에게 직접 듣는게 낫지 않을까. 나는 이왕 말한거, 쐐기를 박자는 심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선생님 뿐만이 아니에요."
"어?"
"당신의 밴드 동료 이자 직장 동료. 다이안씨도 형무소로 보냈구요."
"… …"

 그 말에 쿄우야씨는 말이 없었다. 소중한 사람을 둘 씩이나 형무소로 보낸 변호사. 그게 지금 그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일테지. 나는 그에게 미움을 받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계속해서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제 알겠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약간은 알 것 같아."

 약간은. 그 말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내가 그의 입장이라면 덮어놓고 미워했을텐데. 역시 쿄우야씨는 기억을 잃어도 침착한건 매한가지구나. 얼마 나이 차가 나지 않는데도 이럴 땐 그가 한참 어른처럼 느껴지곤 한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는 사이, 종업원이 주문한 음료를 두 잔 가지고 왔다. 카페라떼와 오렌지쥬스.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마치 쿄우야씨와 나 처럼 말이다. 내가 잔을 반 쯤 비워갈 때에도 그는 깊은 생각에 빠진 듯 잔에 손조차 대지 않았다. 저러다 다 식어버릴텐데. 쿄우야씨는 식은 커피를 싫어했었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그가 생각을 정리한 듯 고개를 든다.

"저기 오도로키군."
"네."
"그 두 사람은 나에게 몹시 소중한 사람이야."
"… 알고 있어요."
"하지만 두 사람은 죄를 지었고, 진실을 덮으려고했지."
"…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에요?"
"난 너와 내가 한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아. 넌 후회하고있어?"

  전혀 생각치도 못한 질문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렸는데 소중한 사람이 둘 씩이나 사라져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사라지게 하는데 일조한 사람이 나타나 당신과 내가 그랬다고 한다면 어느 누가 그 일에 대해 후회하고 원망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런데도 쿄우야씨는 나와 한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오히려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어왔다. 그 질문에 나는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후회하지 않아요."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짓고있어?"
"진실을 덮은건 사실이지만, 그 사람들이 당신에게 소중하다는 것 역시 사실이니까요."
"넌 참 친절하구나."

 그 말에 그만 마시던 쥬스가 사레들리고 말았다. 언제나 이렇게 부끄러운 말을 서슴치않고 한다니까. 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며 쿄우야씨는 그제야 잔에 손을 가져갔다.

"사실 알고 싶었어."
"뭘요?"
"네가 그 재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말야."
"이제 만족해요?"
"응. 덕분에 너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되었고말야."

 나에 대해서 알아서 뭘하려구요. 그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쿄우야씨와는 그 뒤로도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내가 그와 준비했던 재판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해주면,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는듯 미간을 찡그리는 일이 많았다. 첫 재판부터 마지막 재판까지.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질 때까지 쉴새없이 떠들어댔다. 

"고마워. 이렇게 자세하게 이야기해줘서."
"기억은 좀 … 돌아온 것 같아요?"
"아니, 전혀. 그래도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으니까 재밋었어."

 이쪽은 전혀 재밋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야기를 끝으로 이제 더 이상 만날 일은 없겠지. 물론 계속 생각은 날 것 같다. 이렇게 좋아한 사람은 처음이니까. 하지만 첫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듯, 그에 대한 기억도 천천히 사라지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카페를 나왔다. 하지만 몇 발자국 못가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다리가 멈추고 말았다. 

"오도로키군."
"… …?"
"저기, 다음에 다시 연락해도 될까?"

  급하게 뛰어나온 듯 재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쿄우야씨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왠지 첫 데이트를 신청할 때의 쿄우야씨가 생각나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엄청 주저하고, 고민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하면서 뱉었던 그 말. 그 때의 눈빛과 비슷했으니까. 흔들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나도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런 나라도 도움이 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