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역전재판

[쿄오도] 잊어버리다. 8

르체 2016. 3. 26. 00:40
 오랜만에 예의 그 카페에서 차를 마시게 되었다. 어제 전화가 왔는데,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괜히 긴장이되어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하고 말았다. 할 말이 뭘까. 뭔가 기억났다고 하는건 아닐까. 궁금함이 조급함으로 바뀌고, 연신 문을 힐끗거리게 된다. 오려면 아직 먼 걸까. 기다림에 지쳐 갈 무렵, 작은 종이 딸랑거리며 그가 들어왔다.

"여기에요."
"먼저 와있었네. 오래 기다렸어?"
"아뇨. 저도 온지 얼마 안됐어요."

 그렇게 또 거짓말을 한다. 나는 요새 거짓말 쟁이가 되버린 것 같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면 기억을 잃기 전의 쿄우야씨가 뭐라고 할까. 평소처럼 쓰게 웃을까? 아니면 정색하고 화를 낼까. 뭐가 되었든 좋다. 그는 이런 나의 모습을 알 리가 없으니까. 쿄우야씨는 커피를 주문하고, 나는 오렌지 쥬스를 주문했다. 음료가 나오기 까지 조금 기다리면서, 나는 지난 번 법정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물었다. 쿄우야씨가 대답하고, 나는 그것을 받아적고. 음료가 나오고도 한동안은 잡담을 나눌 틈이 없었다.

"그런데말야 오도로키군."
"네, 말해요."
"내가 오늘 무슨 말 하려고 보자고했는지 궁금하지 않아?"

 서류를 집어넣는 내 모습을 보면서 쿄우야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 궁금하다. 하지만 나는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항상 기대하고 있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 요 몇달간의 경험으로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으니까. 그러니까 기대하고 있으면서도 기대하지 않는 척을 했다. 쿄우야씨는 그런 내 반응에 그래..하고 들고있던 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나, 유학 가려고해."
"유학이요? 어디로?"
"궁금하지 않다며?"
"………음."

 이렇게 가끔 그가 장난을 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눈을 내리깔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미국. 예전에 내가 공부했던 곳에 가보려고."
"그렇군요."
"혹시나 예전 일이 기억날지도 모르잖아?"
"그럼 좋겠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왠지 기분이 확 가라앉아버렸다. 기대하지 않을거라고 스스로 그렇게 다짐해놓고서 또 실망해버린다. 나란 녀석은 도대체 학습능력이 없나보다. 그 뒤로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미국. 그러고보니 예전에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피곤해서 그냥 한귀로 듣고 흘려버렸던게 너무도 아쉬워지는 오늘이다. 그 뒤로 한동안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다가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으로 가기까지 짧은 시간이 남아있다. 그 길에 쿄우야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 

"더는 안묻네."
"물어주길 바래요?"
"오도로키군은 별로 섭섭하지 않은가봐."
"검사는 섭섭한가요?"
"응. 섭섭해."

 그 말에 왠지 가슴이 짠해졌다. 하지만 '그럼 가지 말아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솔직하지 못하다. 하고 싶은 말은 끝까지 가슴 속에 꼭꼭 묻어두는 나쁜 버릇은 여전히 고쳐지질 않았다. 

"가면 언제와요?"
"몰라. 안올지도 모르고."

 조금 심통이 난걸까. 쿄우야씨는 투덜거리며 그렇게 대답했다. 안올지도 몰라. 그 말에 갑자기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어딘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과, 아예 돌아오지 않는건 다르다.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을 평생동안 못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발걸음이 뚝 멈췄다. 몇발짝 앞서가던 쿄우야씨는 내가 멈춘걸 모르고 척척 잘만간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곤 황급히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뇨… 아예 돌아오지 않는다니까 조금 놀라서."
"부모님도 다 거기 계시고. 형도 없으니까. 밴드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떴겠지. …어라? 밴드는 옛저녁에 해체했는데 왜 아직도 남아있었지?"

 스스로 말하고도 이상했는지 쿄우야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그저 어깨를 으쓱 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 때문이라고 말하는건 자신감 과잉이겠지. 그러는 사이 역에 도착했다. 쿄우야씨는 여전히 궁금증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인사를 했고, 나도 그에게 인사를했다. 

 마지막일지도 몰라.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점점 멀어져가는 그의 뒷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려니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와 그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전화로 했어도 그만일 이야기를 일부러 만나서 해준것만해도 크게 배려를 받은 기분이니까. 그 이상의 배려는 기대하기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정말 유학을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이후에 나를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그러면 정말 오늘로 그를 보는건 마지막이 아닐까.




 그렇게 갈팡질팡 하고 있을 때였다. 멍하니 걷고있는 쿄우야씨 뒤로 누군가 슬금슬금 다가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잘못 본 것 같았지만 계속해서 보니 그 사람은 분명히 쿄우야씨를 노리는 듯, 벽 뒤에 몸을 감추고 조용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점점 빨라지던 심장이 이젠 아플정도로 죄여왔다. 

'…… 어제 피고인의 가족이 검사국에 침입했었나봐. 퇴근하던 검사의 머리를 각목으로 후려쳤대. 내가 갔을 땐 검사가 이미 쓰러져있어서…'

 갑자기 병원에서 아카네씨가 말했던게 생각났다. 그 생각과 동시에 발이 뛰기 시작했다. 두 번이나 잃을 순 없어. 나를 기억하든 못하든, 저 사람은 나의 소중한 사람이다. 이제는 이렇게 아프기 싫어. 
 그 사람이 뭔가 막대기를 꺼내 들어올리고, 동시에 내가 쿄우야씨를 뒤에서 밀쳤다. 그리고 빠악 하는 큰 소리가 났다. 정말 간발의 차로. 실눈을 뜨니 쿄우야씨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있다. 뭐라고 소리 지르는 것 같긴 한데 뭐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다행이다. 쿄우야씨는 다치지 않았어. 나는 그 사실에 만족했다. 


 ...그 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갑자기 세상이 뒤집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