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미츠] 오랜만의 조우
조용한 집무실에 노크 소리가 두어번 들려왔다. 빠르고 경쾌한 노크 소리. 미츠루기는 시계를 힐끔 쳐다본다. 이 시간에 오기로 약속된 사람은 없다. 따로 연락 온 것도 없고. 무섭고 냉철하기로 소문난 국장의 집무실 문을 이렇게 사정없이 노크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상상할 수 있는 선택지는 대폭 줄어든다.
"들어와요."
허가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활짝 열리는 문. 그리고 익숙한 푸른 양복과 변호사뱃지. 미츠루기의 예상은 크게 엇나가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나루호도. 그러나 지난번에 만났을 때와는 급격하게 변한 모습에 미츠루기는 잠시 크게 당황했다.
"… … 나루호도?"
"오랜만이야 미츠루기."
이렇게 상쾌하게 인사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분명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비니모자에 아무렇게나 난 수염이 참 인상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렇게 급격하게 변할 수도 있는건가. 예전과 같은 푸른 양복이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새로 맞춘걸까. 미츠루기는 요근래 심해진 두통을 느끼며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나루호도 탓이 아니다. 아마도 요새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무슨 용건이지?"
"친구사이에 용건은 무슨."
"난 지금 일하는 중이다만."
"알고있어. 잠깐 얼굴보러 온거야."
뭐가 저렇게 신난걸까. 하지만 옷깃에 자랑스럽게 달려있는 변호사 뱃지를 보면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미츠루기는 안경을 벗어 조심스럽게 안경집에 넣고 나루호도를 소파로 안내했다. 용건은 없다지만 손님은 손님. 그리고 이렇게 급격한 변화에도 이유가 있을테지. 한 번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차는?"
"네가 예전에 줬던거."
"그렇다면 그걸로 하지."
미츠루기가 포트에 물을 올리는 것을 보며 나루호도는 여전히 싱글싱글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어지간히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모른척 하려고했지만 저쪽에서 물어봐주길 기대하는 눈치니 한 번 운이나 띄워볼까.
"… …그런데 그 복장은?"
"새로 맞췄지. 이제 다시 변호사 일을 시작하려고."
"시험에 패스한 건 이토노코 형사에게 들었다만."
"어 그래? 직접 말해주고 싶었는데."
금새 풀죽은 강아지같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게 혼자서 보기가 아까울 정도다. 미츠루기는 포트 물이 다 끓은 것을 확인하고 티팟에 물을 부었다. 곧 향긋한 차 내음이 올라온다. 풀이 죽은것 같았던 나루호도는 어느새 다시 기운을 차리고 자신의 앞에 차를 내어놓는 미츠루기를 향해 신나게 입을 열었다.
"그치만 이 이야기는 못들었을거야."
"?"
"다음주에 바로 법정에 설 예정이거든."
"뭣?!"
차를 내려놓은 다음이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쏟을뻔했다. 나루호도는 이렇게 참 엉뚱한 구석이 있다. 항상 시한폭탄을 가지고 다니다가 자신 앞에 내려놓고 터지는 걸 즐겁게 바라보는 악취미가 있는 것 같다. 미츠루기는 애써 놀란 표정을 지우며 태연하게 나루호도의 반대편에 앉았다.
"이렇게 갑자기?"
"응. 저번주에 있었던 폭파사건 알지? 그 일 때문에 오도로키군이 법정에 설 수 없게되서. 마침 뱃지도 받았고, 여차저차해서 이렇게 재데뷔를 하게 됐지."
"그건… …잘된건가."
"난 잘됐다고 생각해. 마침 계기도 필요했고."
저번 주에 있었던 법정 폭파사건. 그것 때문이었나. 그 일 때문에 삼일 밤낮 야근을 했던걸 생각하면 또 다시 피곤해지려고한다.
"오도로키 변호사의 상태는?"
"괜찮다…라고 본인은 말하는데 역시 법정에 서는건 무리지. 지금은 병원에 있어."
그렇게 말하고는 차를 숭늉마시듯 후루룩 마셔버린다. 예전과 변한게 하나도 없다. 차를 마실 때는 맛을 음미하면서 마시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건만 변하는게 없으니 원. 미츠루기는 다음주에 있을 재판 목록이 적힌 서류를 가져와 넘겨보았다. 그러다 눈길이 멈춘 한 사건. 수정 전의 자료인지 변호사 측엔 오도로키의 이름이 올라가있다. 이래서야 모를만 하지.
"그럼 이 사건을 네가?"
"응. 다음주에."
"그렇군."
미츠루기는 서류를 내려놓고 차를 한모금 마셨다. 베르가못 향이 진하다. 평소보다 조금 진하게 우려졌나. 차를 마시는 미츠루기를 보며 나루호도가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저기 말이지 미츠루기."
"뭔가."
"음……그러니까."
답지않게 말을 흐리는 나루호도를 보며 미츠루기는 또 무슨 말로 자신을 놀래킬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얼마간 주저하던 나루호도는 결국 크게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아, 이제야 말할건가. 뿜을지도 모르니 차는 내려놓도록하자. 미츠루기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 한모금을 넘겼다.
"다음주의 재판. 보러 와줬으면해."
"…? 내가?"
"응. 네가 와서 봐줬으면해. 물론 바쁜건 알아. 국장이 그렇게 한가한건 아니니까. 하지만…"
"어째서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을 지목해서 미츠루기는 조금 놀랐다. 오늘 여기에 온 것은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나.
"난 말이지, 예전에도 말했지만 네 덕분에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거니까. 그러니까 네가 와서 다시 변호사가 된 내 모습을 봐줬으면 좋겠어. 보고, 가차없이 평가해줬으면 좋겠어."
"… …"
"역시 무리일까나."
그렇게 말하며 짓는 사람좋은 미소. 요 몇년간 보았던 쓸쓸하고 공허한 미소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다시 이런 모습을 보게 될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미츠루기는 티포트를 가져와 비어버린 자신의 잔과 나루호도의 잔을 다시 채웠다. 나루호도는 선생님 앞의 학생처럼 안절부절하며 미츠루기의 눈치를 살핀다. 하지만 미츠루기는 차를 따르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를 따르고, 다시 음미하고. 나루호도 역시 조용히 차를 마셨다. 두 사람 사이엔 정적만이 흘렀다.
그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루호도가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얼굴만 보고 간다더니 너무 방해했네. 그럼 이만 갈게."
문을 열고 나가는 뒷 모습이 조금 쳐진것 같이 느껴지는건 착각일까.
"나루호도."
"응?"
"재판은 몇 시지?"
그 말에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나루호도의 표정을 보면서 미츠루기는 살짝 미소지었다. 정말이지, 저 녀석은 나이만 먹었지 초등학교 때와 별로 다를게 없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