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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오도] 잊어버리다. 3
글/역전재판
2016. 3. 26. 00:34
그 충격적인 사실을 눈치 챔으로써, 나는 차가운 사무실 바닥에 30분은 더 넘게 앉아있었던 것 같다. 엉덩이도 아프고 순간적으로 짚었던 손목도 지끈거리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참았다. 쿄우야씨가 기억상실에 걸린 후, 이렇게 가끔 울고 싶어졌지만 나는 그 때마다 참았다. 운다고해서 그의 기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지극히 실용적인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울면 기분이 좀 나아지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아, 늦겠다."
그러다 겨우 정신을 차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내 공기가 싸늘하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까 가야했다. 그래서 양복 상의를 챙기고, 가방을 챙기고서 사무실 문을 잠갔다. 그리고 카페를 향하는 내내 뭘 말할지 생각했으나 아무것도 떠오르는게 없었다. 그저,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다.
역 앞 카페는 한산했다. 평일 오후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저 할 일 없이 신문을 읽고 있는 노인 들과 구인광고를 열심히 뒤적이고 있는 젊은이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휴일이어도 한산한 가게라 쿄우야씨가 굉장히 좋아했기에 항상 여기서 만났던 기억이 난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 가면, 아무리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려고 꼭 하나 둘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사람도 적고,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 이 가게를 좋아했다. 이 카페를 약속장소로 잡은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무의식중에 나온 버릇일까.
"여기야."
"…… 안녕하세요."
쿄우야씨는 제일 구석 창가자리에 앉아있었다. 항상 우리가 앉던 자리다. 우연과 우연이 겹치자 나는 계속 생각하기가 피곤해지기까지 했다. 그의 반대편에 앉으며, 표정을 살폈다. 반가운 표정이긴 하지만 예전처럼 날 볼 때 지었던 그런 표정은 아니다. 여기까지 와서 뭘 기대했던 걸까. 뭔가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주문부터 할까?"
"그러죠 뭐."
"난 카페라떼. 넌?"
"……… 오렌지 쥬스로 부탁합니다."
나에게 시킬 것을 묻는다는 점에서 이미 이 사람은 내가 알던 쿄우야씨가 아니다. 이런 대화는 사귀기 시작한 이래로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는 카페라떼, 그리고 나는 오렌지쥬스. 암묵적인 룰 처럼 굳어진 메뉴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틀렸다는 거다. 메뉴를 시키고 잠시 기다리는 사이 쿄우야씨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이렇게 불러내서 미안해."
"아뇨. 괜찮습니다.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다고 했죠?"
"응."
그렇게 말하고 그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해. 지난 번에 그렇게 말해서."
"예? 아, 아뇨. 사과할 것 까지는……"
"아냐. 이건 사과해야 마땅할 일이야. 미안해. 기억이… 정말로 안나서 그랬어."
지난 번의 그 일이란 병원에서 나보고 '누구냐'라고 물었던 그 일이겠지. 갑작스런 사과에 나는 당황했다. 그걸 왜 이제와서? 그리고 말하는걸 들으면 아직도 기억나지 않는 것 같은데. 쿄우야씨는 고개를 들고 다시 물었다.
"네가 오도로키군 맞지?"
"네. 제가 오도로키입니다만."
"오도로키 호우스케. 그 때 병원에서 보고, 형사군에게 부탁해서 네 조사를 좀 했어. 미안해."
"조사요? 왜요?"
"네가 나한테 중요한 사람 같았으니까."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동물적인 감이 좋은걸까. 아니면 단순히 병원에 찾아가서 다짜고짜 괜찮냐고 달라붙었던 것 때문에 그랬던걸까.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는 가방에서 서류를 몇 장 꺼냈다. 슬쩍 눈으로 훑어보니 내가 그와 담당했던 사건들에 관한 서류인 것 같다.
"신참 변호사. 나와 법정에서 세 번 만난 적이 있었어. 그리고 형의 제자. 우린 꽤 가까웠던 사이인 모양이야."
"……"
저렇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물론 표면 아래의 관계에 대해선 전혀 알 턱이 없겠지만. 쿄우야씨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류를 넘겼다.
"선생님은 기억 나요?"
"형? … 아아. 변호사로 일했던 것 까지는 기억나. 물론 나중에 형이 저지른 일을 알게되고선 좀 놀랐지만."
"괜찮아요?"
"응. 괜찮아… 아니, 사실은 괜찮지 않아. 항상 제일 믿었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까 범죄자로 형무소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가 좀 어려웠지. 어, 그러고보니 형의 재판 때 …"
그렇게 말하던 그가 미처 말을 끝맺지 못하곤 불안한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본다. 단 한번도 그런 시선으로 나를 본 적이 없던 쿄우야씨였다. 올게 온건가.
"그래요. 나와 당신이 선생님의 죄를 입증하고 형무소로 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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