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피터] Time to sleep, spidy. 3

글/MCU 2017. 7. 19. 17:00




처음으로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한달쯤 전이었다. 그러나 일이 바빠 곧 잊어버렸고, 중요한 일이라면 곧 생각나겠지 싶어 뒤로 미뤄뒀더니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 해서, 컨퍼런스 건은 제가 총 담당을 맡는걸로 하기로 했는데요. 보스?"
"아, 계속해."


 해피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토니는 그 이상한 위화감의 정체를 생각해내기 위해 해피의 보고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뒀지만 더 이상 미루었다간 왠지 곤란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해피의 보고는 거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지난 주에 남아메리카에서 캡틴이 나타났다는 제보가 있었고, 완다로 추정되는 기이한 현상에 대한 영상 자료가 이어졌다. 이상하다, 중요한 일이라면 바로 기억이 났을 텐데 ... 도대체 뭐지.


"...그리고 스파이더맨은 별 일 없는것 같고요."
"아, 그래! 그거였어! 해피, 아주 잘했어."
"예?"
"급한 볼일이 생각났어. 브리핑은 여기서 끝. 급한 일 있으면 연락해."


 생뚱맞게 칭찬을 받은 해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토니를 쫓아가려 했으나 그는 이미 복도 저 건너편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토니는 '스파이더맨'이라는 키워드에서 드디어 그 이상한 위화감의 정체를 찾아냈다. 그래, 녀석이 너무 조용했다. 물론 조용히 지내라고 지시를 해두긴 했지만 그래도 너무 조용하다. 평소같으면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나 메세지가 남겨져 있었을텐데, 마지막으로 연락을 받은게 언제였더라. 빠르게 걸으며 수신함을 확인해보니 피터에게 온 메일은 두달 전이 마지막이었다. 통화는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프라이데이, 해피의 휴대폰이랑 메일 수신 내역 검색좀해봐. 수신인은 피터 파커로."  
[네 알겠습니다.]


 해피가 알면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흰 눈을 뜨고 화를 냈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토니는 해피의 수신함을 해킹했다. 수백건의 수신 내역이 있었으나 마지막 발신일자는 토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두달 전에 마지막으로 '학교 끝났어요.'라는  문자가 와있었다. 그러고보니 매일같이 '오늘은 꼬맹이가 츄러스를 얻어먹었다는군요, 부럽기도하지.'하며 보고 때마다 비꼬던 해피도 요새는 '잘 지내는 모양이더군요'로 보고를 마치곤했다. 아마 직접 보고 들은게 아니라 멀리서 관찰한 듯한 말투였지. 왜 깨닫지 못했을까. 토니는 자신의 무신경함을 탓하며 시계를 확인했다. 4시라.. 학교는 이미 끝났을테니 교문앞에서 기다리기는 늦었고 일단 전화부터 해볼까. 토니는 흠흠, 하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피터군에게 연결 해드릴까요?]
"아아, 부탁해. 아니, 잠깐만. 잠깐 프라이데이. 마음의 준비가 안됐어."


 토니는 황급히 취소버튼을 연타했다. 왜 갑자기 긴장이 되는거지. 침을 꿀꺽 삼키고 살짝 심호흡을 해보았으나 여전히 전화를 걸 결심이 서지 않았다.


"잘못한것도 없는데 왜 긴장이 되는거야..."


 엄밀히 말하면 방치한거지만. 토니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렸다. 하워드 역시 지금의 토니와 비교해 바빴으면 바빴지 덜 바쁘진 않았다. 두세달씩 훌쩍 외국에 나가 연락도 없다가 어느날 정신차려보면 저녁식사 자리에 참석해있는게 하워드 스타크였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니 어느정도의 방관은 토니에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상대가 피터가 아니라면 말이지. 하워드와 토니같이 부자관계는 아닌 두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피터는 토니에게 각별했다. 자신을 동경하는 어린아이, 그리고 그 어린아이를 전장으로 끌어들인 자신. 그에게는 피터에대한 책임이 있었다. 물론 책임감 뿐인 것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직 희망은 있다.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 '당분간은 바쁘니 해피랑 연락해라'라던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라고 좋게 끝났으면 두달정도 방치했다해도 큰 문제는 없을테였다.


"프라이데이, 내가 꼬맹이랑 마지막으로 통화했던게 언제였지?"'
[두달 전, 나이트모드를 한시간만 연장해 달라고 캐런에게 요청이 들어와서 통화했던 기록이 있네요.]
"...아."


 마지막 통화마저 최악이었다. 토니는 더욱 더 통화를 연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육아상담은 내 전공이 아닌데."


 배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번에 심리상담 부탁했을 때도 전공이 아니라고 거절했던 것 같은데, 토니는 도무지 배너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지금 심각하게 손님용 소파에 앉아 깍지끼고 앉아있는 토니 스타크가 육아상담하러 왔다고하면 누가 믿을까. 일단 손님은 손님인지라 토니에게 커피를 대접했으나 그는 잔에 손도 대지 않은 채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육아상담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열 다섯 소년 상대로 고민이 있다면 마땅히 육아상담이지 않겠어?"


 토니는 그 말에 안그래도 찌푸려진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 틀린 이야기도 아닌데 뭐. 배너는 그렇게 말하며 반대편 소파에 편하게 몸을 묻었다. 배너는 피터를 만난 적이 없다. 신문기사와 TV, 그리고 보고서의 지면으로만 만난게 전부인 사이. 다만 평범(이라기에는 좀 똑똑했지만 어쨌든)한 미드타운 재학생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라는 사실은 안다. 그리고 그걸 끌어들인게 토니라는 사실 역시 알았다. 그 두가지 이유만으로 지금 토니의 육아상담까지 받아줘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나보다 더 적합한 상담자가 있지 않아? 나타샤라던가, 페퍼라던가."
"냇은 지금 아프리카 오지에 있고 페퍼는 영국으로 가있어."


 그 간결한 대답에 배너는 결국 상담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상담이라고 해봤자 토니가 하는 이야기를 좀 들어주면서 수긍해주면 되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한게 아마 그 날 오후 배너의 최대 실수였을 것이다.

 토니는 최대한 자신을 변호하며 그 간의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이야기를 다 들은 배너의 눈이 불신으로 가득찼다는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마시던 커피가 바닥을 보일 때까지 토니의 이야기(와 자기변호)는 끝나질 않았다.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기 직전, 배너가 그 이야기를 끊는 수밖에 없었다.


"토니, 자네가 그 아이를 걱정하는건 알겠지만 역시 좀 지나쳤다고 생각하진 않나?"
"내가? 왜?"


 무엇이 잘못됐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에 배너는 다시 한 번 자신을 꾸욱 눌러야했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할까.


"가령 자네가 아버지께 아이언맨 수트를 선물받았다고 치지."
"우리 아버진 나에게 그런 비슷한 선물 단 한번도… 아니, 미안해. 계속해."
"…보기만해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최첨단 수트를 선물받았는데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위험하다는 이유로 압수당하면 어떨것 같나."
"똑같은걸 내가 만들겠지.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배너는 화를 잘 참는 사람이었다. 그가 잘 참지 않았다면, 그리고 항상 화가 나있지 않았다면 벌써 초록녀석이 튀어나와 아이언맨과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었을 것이다. 배너는 그냥 토니의 이해를 얻는 과정을 포기하기로했다.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지금 자네가 고민하는 이유가 뭔데?"
"아, 그래서 그 때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방치해버렸거든. 그 뒤로 화났는지 연락이 안와."
"자네 쪽에서 먼저 연락해보면?"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이렇게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뭐 어쩌라는거지. 스타크씨가 부르니까 얼른 오라고 연락해줄까? 그렇게 물었으나 토니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이래도 싫다, 저래도 싫다. 배너는 더 이상 그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그러니 이제 그만 가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한 대치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럼 연습이라도 해보는건?"
"그거 괜찮네!"


 지친 배너가 되는 대로 뱉어낸 해결책에 이 방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토니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배너 역시 덩달아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 지긋지긋한 육아상담을 얼른 끝내고 기지에서 탈출해버릴테다, 하고 만세라도 부르려던 그에게 다시 한 번 역경이 닥쳤다.


"피터 역할은 자네가 해줄거지?"

"... ...AI로는 안되겠나?"


 토니는 다시 한 번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흠흠, 어, 안녕 꼬맹이. 잘 지냈어?"

"... ... 아니요.(가성)"
"그간 내가 연락이 좀 뜸했지? 아무래도 나쯤되면…"
"토니, 아이가 잘지내지 않았다는데 자기얘기만 하는건 좀 아닌것 같은데."


 그 지적에 토니의 얼굴이 똥씹은 표정이 되었다. 벌써 몇 번째 컷당하고 있는건지. 토니는 노트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야기하기'항목에 가로줄을 주욱그었다. 그밖에도 '미안하다고 말하며 불쌍한 표정짓기', '수트 성능 업그레이드해주겠다고 회유하기', '자신의 열 다섯살 때 이야기하기'등의 항목 모두 배너에게 컷당했다. 배너는 현재의 자신도 불쌍했지만, 이런 토니에게 케어받고 있는, 얼굴도 모르는 열다섯 청소년 피터가 굉장히 가여워졌다.  


"이래서야 연습이 아무 소용이 없겠어."


 결국 배너 쪽에서 먼저 항복의사를 밝혔다.


"왜?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그 전에 초록녀석이 먼저 튀어나올 것 같아."
"… … 어쩔 수 없네."


 아직 시도해보지 못한 항목이 열개쯤 더 있었으나 배너의 인내심이 바닥나고있다고 하니 이쯤에서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시간낭비만 한 셈이다. 아, 정말 되는 일이 없네. 그렇게 말하며 토니가 지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를 안쓰러운마음 반, 귀찮은 마음 반으로 바라보며 배너가 물었다.


"한창 예민할 때잖아. 그냥 내버려두면 되지 않을까?"
"그러다 비뚤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자네처럼만 안되면 되지."
"너무한데. 나정도면 그래도 괜찮은 어른이지 않아?"
"… …"
"지금 눈 피한거야?"
"오해야."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투닥이던 둘 사이로, 프라이데이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보스, 말씀중에 죄송합니다. 보고사항이 있어서요.]
"뭔데?"
[피터가 다친것 같아요. 캐런을 통해 베이비모니터 쪽에서 알림이 왔네요. 수트에도 손상이…]


 배너는 토니와 꽤 오랫동안 교류했고 그동안 여러 모습을 보았다 생각했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는 것은 처음 보았다. 나중에 보자며 튕기듯 일어난 그를 배웅하며, 배너는 오후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커다란 폭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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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캐런과 프라이데이

글/MCU 2017. 7. 17. 15:07

*AI들에 대해 엄청난 날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가로등의 불빛을 보고있으려니 정말 뜬금없이 피터가 생각났다. 언제 마지막으로 봤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걸 보니 정말 오래된 모양이었다. 근래에 눈돌아가게 바빴던 일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그동안 사고를 치지 않고 얌전히 지낸게 기특한걸. 다음 주에 시간 내서 식사라도 한 번 하는게 좋겠다. 생각한 김에 바로 실행하지 않으면 집에가서 바로 잠이들것 같아 토니는 스케쥴을 확인하기로했다.


"프라이데이, 다음주 일정이 어떻게되지? 빈 시간 좀 있나 확인해줘."
[다음 주 내내 일정이 있으신데요.]
"아, 어떻게 좀 안되나…"
[목적을 말해주시면 우선순위에 따라 조정해보겠습니다.]


 우선순위라는 말에 토니의 눈썹이 살짝 꿈틀댔다. 프라이데이의 말에 작은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말한 우선 순위란 일의 중요도에 따라 분류하겠다는 뜻이겠지. 거기다가 '피터와 식사를 하고싶다'라고 말하면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졌던 것이다. 자신이 만든 인공지능은 일을 우선할것인가, 사람들사이의 교류를 우선할 것인가. 개발자로서 흥미진진한 소재가 아닐 수 없었다. 토니는 일단 운을 띄워보았다.


"피터와 식사를 하고싶은데."
[보스,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요.]
"왜?"


 프라이데이는 일이 우선인 타입이었나. 딱히 그런걸 설정한 기억은 없는데... 토니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그가 짐작한 것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이었다.


[피터는 다음 주 내내 시험기간이거든요. 다음주는 피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런거였나. …음?"


 대답에 수긍하려던 토니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너무 당연하게 대답이 돌아와서 그 이상함의 정체를 깨닫는데 시간이 두배로 걸리고 말았다. 프라이데이의 대답에는 명확하게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잠깐만 프라이데이, 네가 어떻게 꼬맹이의 일정을 알고있는거지?"
[… …]
"프라이데이?"


 꼬마의 일정을 내 캘린더에 입력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는데. 토니가 재차 프라이데이에게 답을 요구했으나 그녀는 답지않게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다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무튼 다음주는 적절하지 못한 생각 같아요 보스.]
"살다보니 인공지능이 말돌리는걸 다보네…"


 귀한 경험 한 셈 치고 이번은 그냥 넘어가줄까. 토니는 그렇게 말하며 다음주 일정을 불러와 직접 확인하기 시작했다.
 





[피터, 지금 혹시 괜찮아?]
"네?"


 한창 숙제를 하고 있던 피터는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의 작은 방에는 자신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잠깐 헤메던 피터의 눈이 자신의 손목시계로 향했다. 아, 이걸로도 캐런과 연결되지. 자주 깜빡하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손목시계를 톡톡 두드리며 대답했다.


"캐런, 무슨 일이에요?"
[확인하고 싶은게 있어서.]
"뭔데요?"


 캐런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인지라, 피터는 하던 숙제를 뒤로하고 그녀에게 집중했다. 뭔가 급한 일인가? 당장이라도 수트를 꺼낼 수 있게 가방을 열던 그에게 캐런이 던진 질문은 정말 상상도 못한 것이었다.


[츄러스랑 샌드위치 중에 뭐가 좋아?]
"예?"


 잘못들은 건가? 피터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저기 캐런, 지금 혹시 츄러스랑 샌드위치 중에 뭐가 좋냐고 물은거 맞아요?"
[그런데?]


 너무도 당연한 말투에 피터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보통 인공지능이 이런걸 물어보기도 하나? 아니면 스타크씨가 만든 특제 인공지능이라서 그런건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어느것하나 적절한 대답이 되지 않았다. 덕분에 대답이 늦어지는걸 기다리던 캐런이 또 다시 인공지능 같지 않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너무 어려운 질문인가? 그래도 3분 20초 안에는 대답을 해줬으면 하는데.]
"어렵진 않은데 당황스러워서요. 어, 굳이 따지면 지금은 둘 다 아닌데."


 간식을 배불리 먹었거든요. 그렇게 덧붙이는 피터의 대답에 캐런은 정말 사람처럼 고민에 빠진 듯 잠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다른 반응이 돌아오지 않자, 피터가 조심스레 물었다.


"캐런, 혹시 뭐때문에 그러는건지 물어봐도 되요?"
[대답은 나 대신 다른 사람이 해 줄 수 있을 것 같네.]


 그녀가 사람이었다면 분명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였을 것이다. 피터의 귀에는 캐런이 기계음이 마치 웃음을 꾹 참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처음듣는, 아니 엄밀히 말하면 처음은 아닌 기계음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안녕 피터, 이렇게 보는건 처음이지?}
"…프라이데이?!!"



 테이블 위에 두 개의 손목시계가 있었다. 하나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싸구려 손목시계였고, 하나는 백화점 고급매장에서도 보기 힘든 값비싼 명품시계였다. 그리고 그 시계를 가운데 두고 주인들이 마주 앉아있었다.  


"흥미로워, 아주 흥미로워."


 토니가 수염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던 토니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퀸즈로 향한게 약 한시간 전. 그리고 빈손으로 가는게 겸연쩍다며 뭘 사가면 좋겠냐고 토니가 프라이데이에게 의견을 구한게 삼십분 전. 그 요청에 제일 적당한 답을 찾아보겠다며 프라이데이가 캐런의 AI시스템에 침입(프라이데이는 마실이라도 나온것처럼 방문이었다고 태평하게 말했지만 토니는 그것을 딱잘라 침입이라고 정의했다.)한게 십오분전. 그 사실을 알아차린 토니가 화들짝 놀라 피터에게 전화를 건게 십분 전. 이 모든 것이 약 한시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원래 이런게 가능한게 아닌가요?"
"내가 알기론 … 아니, 선례가 없으니 알 수 없지."


 자신이 개발한 AI였지만 피터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내어준 적은 없다. 비전은 너무나 예외의 경우이니 없던 것으로 친다해도 AI끼리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봤고, 들은 적도 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AI끼리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테지만 이 경우는 마스터의 통제를 벗어나 자기들끼리 제멋대로 교류를 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게다가 기록을 조회해보니 이미 세달 전부터 그러고 있더란다. 토니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버그로 분류해야 할 문제인가 … 하지만 그렇다기엔 이쪽이 피해입은게 없었다. 약간 놀란정도?


"저… 스타크씨?"
"어? 아, 미안. 불러놓고 아무말도 안하고."


 오랜만에 전공자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가 튀어나온지라 그만 정신을 다른데 쏟고 말았다. 토니는 일단 캐런과 프라이데이 문제는 뒤로 미뤄두기로했다.


"오늘은 어쩐일이세요?"


 쭈뼛거리며 물어오는 폼이 또 수트를 뺏으러 온건 아닌가 싶어 걱정하는 눈치다. 하긴, 이렇게 갑자기 불러내면 긴장할만도 하다. 어지간히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야 보통은 통화로 해결하니까. 그래서 토니는 순간 고민했다. 솔직하게 오랜만에 보고싶어서 왔다, 라고 말하는건 너무 간지러운 이야기겠지. 그래서 한 번, 두 번 돌려 이야기를 꺼냈다.


"근처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배가고파서말야. 괜찮다면 같이 식사라도 할까해서."


 피터는 왠지 그 뒤에 이어질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츄러스랑 샌드위치 중에 뭐가 더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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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Time to sleep, spidy. 2

글/MCU 2017. 7. 15. 21:54





처음 그 일을 결심한건 아침에 시리얼을 먹으며 티비를 보고 있을 때였다. 간밤에 편의점 강도가 나타나 칼로 위협하는 뉴스 영상을 보고 피터는 새삼 범죄는 시간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범죄라는 특성상 시간대가 밤에 집중된 것은 말하면 입 아픈 사실이었고. 자신이 평소 활동하는 시간은 거의 방과 후부터 저녁시간 전까지로 한정되어있었다. 저녁식사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메이 숙모가 걱정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 그 후에 일어난 범죄는? 스파이더맨은 퇴근했으니 그냥 내버려둬도 되는 걸까? 피터는 그 문제에 대해 길게 생각하지 않고 바로 수트를 들고 네드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둘은 상의 끝에 경찰 무전을 도청해 캐런에게 연결하는 엄청나게 쿨하고 멋진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이제 퀸즈는 스파이더맨의 24시간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라는게 그 멋진 시스템의 요지였는데 엉뚱한 곳에서 방해를 받고 말았다.  
 물론 피터도 새벽 두시 오십분에 나갔던 일에 대해서는 반성했다. 토니에게 혼나며 아침을 시작하니 하루 종일 우울해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수업도 (조느라) 듣는 둥 마는 둥. 방과 후 미쉘은 하루 종일 졸고 있던 피터의 옆모습을 그려 그에게 보여주었다. 여튼 그렇게 우울하게 하루를 보낸 피터는 곧장 침대로 뛰어들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자신을 다독였다.
 그래, 스타크씨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잖아. 새벽 두시 오십분은 솔직히 너무했지. 오늘 수업도 하루 종일 졸았잖아. 네드에게 말해서 그 기능은 해제하는 게 좋겠다. 당장 눈에 보이는 사건 해결만으로도 눈 돌아가게 바빠서 숙제할 시간도 부족하니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맨은 청소년 노동법을 준수하는 게 좋겠어. 학교가 끝나면 활동을 시작하고, 해가 지면 적당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말야.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언제 잠들었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바깥이 컴컴했다. 또 타는 냄새가 나는 것 보니 숙모가 오늘도 요리를 실패한 것 같다. 피터는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처음 몇 주간은 결심을 잘 지켰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적당히 정리하고 집에 돌아가 숙모와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숙제를 하던가 스파이더 슈트의 새로운 기능 구상이라던지 생각하면서 보냈다. 네드에게 부탁해서 달았던 기능도 해제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제하려고 네드에게 가져갔더니 '이미 해제 되어있는데?'라는 대답이 돌아온 것이었지만. 그렇게 낮에는 피터 파커로, 방과 후에는 스파이더맨으로 꽉꽉 채워진 일상을 보낸 피터가 뒤통수를 맞은 것은 한 달쯤 후였다.


"캐런, 새로운 기술을 생각해 봤는데요. 스타크씨처럼 손바닥에서 열을 뿜으면 거미줄 용액이 순간적으로 용해되면서 점성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글쎄, 내 생각엔 그 용액은 녹여서 쓰는ㅡ것ㅡ보다는ㅡ]
"어어? 캐런? 왜그래요? 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캐런의 늘어지는 목소리에 피터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고장인가? 아니, 아까까지만 멀쩡했던 수트가 고장일리는 없다. 아까부터 피터는 얌전히 책상에 앉아 노트북과 필기만 보고 있었으니까.


[미안 피ㅡ터ㅡ나이트ㅡ모드ㅡ가동.]
"나이트모드?"


 동시에 시스템이 다운됐고, 거실에 있는 티비에서 아홉시를 알리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캐런이 남긴 나이트 모드라는 말.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감으로 알 수 있었다.
"스타크씨....."


 뉴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원흉은 토니 스타크. 피터는 우스갯소리로 떠돌던 그 말의 의미를 그 날 처음으로 이해했다.
 



 캐런은 새벽 여섯시가 되자 정상적으로 부팅됐다. 수트 복면을 뒤집어 쓴 채로 잠들었던 피터는 캐런이 건넨 굿모닝이라는 말에 잠에서 깼다. 그녀는 어제 그렇게 끊어져버려서 미안하다며 피터에게 사정설명을 했다.


[나이트 모드라는 건 쉽게 말해 기능 잠금이라고 보면 돼. 나는 저녁 아홉시 이후부터 새벽 여섯시까지는 널 도와줄 수 없어.]
"전 그런 기능 부탁한 적 없는데요. 해제해주세요."
[최고관리자로부터 입력된 기능이라 내 선에서는 해제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렇다면 역시 스타크씨가?"
[그래, 맞아. 그가 왜 이런 기능을 설정했는지는 대충 알 것 같지만말야.]


 캐런의 말에 피터는 침묵했다. 그 날 통화 이후로 아무 말 없어서 그냥 혼나고 끝난 것이라 생각했는데 세상은 그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나이트모드라니, 어린애 취급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피터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며 수트를 가방에 구겨 넣었다.


"나이트모드? 아하하, 스타크씨가 널 어지간히도 아끼나보다."
"아끼는 게 아니라 어린애 취급하는 거지."


 피터가 툴툴거리며 내뱉자 네드는 다시 한 번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왠지 이 상황에 기시감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 아닐 테였다. 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스파이더 수트와 거기에 연결하고 있는 네드의 노트북. 그리고 거기에 붙어 어떻게든 나이트모드를 해제해달라고 조르고 있는 피터.


"캐런은 자기 선에서 해제할 수 없대. 그러니까 부탁 좀 하자."
"음... 네가 날 믿고 부탁한건 고맙지만 나 역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은데."


 정신없이 명령어를 입력하던 네드의 손이 멈췄다. 그리고 화면을 빙글 돌려 피터에게 보여준다. 화면에는 근엄한 토니 스타크의 사진과 함께 '수트 함부로 건들지 마라, 애송이들.'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동시에 피터의 휴대폰으로 비슷한 내용의 문자가 도착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엉뚱한데 시간 낭비 하지 말고 건실한 일이나 하자고 친구."


 네드는 그렇게 말하며 레고박스를 내밀었다.


 건실한 생활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본인 스스로도 당분간은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나이트모드는 정말 너무했다. 오후 9시라니, 숙제 끝나면 바로 씻고 잠드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경찰 내선을 도청해서 범죄현장으로 뛰어가는 것도 아니고, 밤늦게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 악당들을 만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바로 지금처럼!
 피터는 심부름으로 들고 오던 봉지를 내동댕이치고 급하게 재킷 주머니에서 스파이더 복면을 꺼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8시 57분이었다. 3분 안에 끝낼 수 있을까. 캡틴이나 아이언 맨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무리겠지. 벽 모퉁이에 바짝 붙으며 피터는 급하게 캐런을 호출했다.


"캐런, 캐런!"
[안녕 피터. 유감이지만 나이트 모드 때문에 널 도와줄 수 있는 시간은 2분 30초 정도겠네.]
"알고 있어요. 그 전에 어떻게든 저 악당을 잡고 싶은데."
[그건 무린데. 너도 알고 있지 않아?]
"그럼 어쩌죠? 어떻게 방법 없어요?"
[하나 있어.]
"뭔데요? 스타크 씨한테 제발 수트 좀 쓰게 해달라고 비는 게 아니면 해볼게요."
[아... 유감이지만 비슷해. 스타크 씨의 허가 하에 9시 이후에 수트 기동이 가능하거든.]
"되는 일이 없네."


 말이 씨가 된다더니. 피터는 혀를 차고 다시 한 번 슬쩍 강도 쪽을 바라보며 건물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다행이 차가 없는지 강도들은 느릿느릿 가로등 그림자 사이로 움직이고 있었다. 차는 없지만 그래도 총을 들고 있어서 수트 기능도 없이 그냥 접근하는 건 좀 위험할 것 같은데 …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을 때였다.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뭐냐 꼬맹이. 이 시간에 수트 쓸 일 있어?]
"스타크씨? 캐런, 전화 연결했어?"
[아무래도 곤란할 것 같아서 연결했어. 자, 어서 말해봐.]
"아, 저기 안녕하세요 스타크씨. 음, 믿으실 진 모르겠지만 제가 길거리에서 지금 강도를 만났거든요."
[널 덥치기라도 했어? 지갑을 뒤지고 막 두들겨 패기라도 하디?]
"그런 건 아니구요, 지금 돈을 훔쳐서 멀리 달아나고 있는데, 저기 나이트모드를 한 시간만 연장해주시면 제가 얼른..."
[경찰에 신고해.]
"예?"
[신고라하고. 못 들었어?]


 피터는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한 번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토니는 재고할 여지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피터의 요청을 거절했다.


"아니 그치만 스타크씨, 지금 히어로가 있는데 굳이 경찰에 신고를 할 필요는..."
[히어로 영업종료 시간 45초 남았다 꼬맹이.]
"윽."
[경찰들도 나라에서 주는 세금만큼 일을 해야지. 자, 얼른 저 골목 모퉁이에 던져놓은 봉지 가지고 숙모에게 돌아가. 빨리 줍지 않으면 고양이가 물어갈 것 같은데. 그럼 끊는다.]
"스타ㅋ...!"


 전화는 또 일방적으로 종료되었다. 결국 스파이더맨이 '굳이 경찰에게' 신고 전화를 하고서 강도들은 붙잡혔다. 결과적으로는 아무도 다치지 않고 평화롭게 일이 해결된 셈이었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는 피터의 기분마저 평화로운 것이 아닌게 문제였다.
 잔뜩 화가 난 피터는 프라이데이에도 똑같이 나이트모드를 적용시켜버리겠다고 씩씩대며 집으로 돌아왔지만 스파이더 수트 해킹도 혼자 못하는 실력으로 토니의 AI를 해킹할 수 있을리 만무했다. 스파이더맨은 그 후로도 방과 후부터 오후 아홉시까지 성실하게 이웃을 도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이트모드를 적용한 토니에게 화가 풀린 건 아니라서, 나름 복수랍시고 해피에게도 토니에게도 일절 문자나 연락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 감시하고 있을 테니 무의미한 반항이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

지인이 이 글을 보고 스파이더맨 셧다운제 당한거냐고해서 제목을 셧다운제로 해야하나 고민하기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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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SSS] 두집 살림

글/MCU 2017. 7. 14. 16:09



"그럼 이렇게하지. 집에 있는 연구실에서 설계도를 가져올 테니까 박사가 그걸 받아줘. 기초 제작만 해주면 내가 여기서 어떻게든 진행을 시키면 … 뭐냐 꼬맹이. 할 말 있으면 해."


 배너와 이야기를 나누던 토니가 화면 너머 소파에 앉아있던 피터를보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아까부터 피터가 이마가 뚫어지도록 자기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토니의 지적에 깜짝 놀란 피터가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배너는 자기 일이 아니니 말 없이 웃을뿐. 토니는 화면을 배너쪽으로 밀고 피터에게 말했다.


"신경쓰이니까 빨리 할 말하고 비전이랑 가서 놀던가 해."
"별건 아니구요, 스타크씨는 항상 두집살림하느라 힘드시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두집... 뭐?"


그 말에 토니의 눈이 도끼모양이 되었다. 그 모습에 배너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다행이도 당분간 초록 괴물이 될 염려는 없어보인다. 피터는 자기가 뭔가 잘못말했나 하고 갸웃하며 문제의 그 단어를 다시 입에 올렸다..


"두집 살림이요. 그러니까 스타크씨 원래 집이랑, 어벤져스 시설 관리하려면 여간 힘든…"
"너 그 말 어디서 배웠냐? 어디가서 내가 두집살림하고 다닌다고 말한거 아니지? …미안해 박사, 나 얘랑 얘기 좀 하고 올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배너를 뒤로하고 토니는 피터를 데리고 바람같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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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Time to sleep, spidy. 1

글/MCU 2017. 7. 13. 16:22





 빗소리에 아침을 시작하는게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음, 글쎄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토니가 한 생각은 '참 별걸 다 좋아하는군.'이었지만. 뜬금없이 왜 흘러간 잡담을 곱씹고 있느냐하면, 토니 역시 빗소리에 눈이 떠졌기 때문일것이다. 흐릿한 시야에 얼굴을 찡그리자 어두운 실내가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시간이 가늠되질 않았다.  


"프라이데이, 지금 몇 시지?"
[굿모닝 보스. 현재 시간은 AM 4:56입니다.]


 기계를 조립하다 잠든게 2시 넘어서였으니 채 세시간도 제대로 못 잔셈이다. 부족한 수면을 호소하듯 머리가 아파왔다.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토니는 소음의 원인이었던 반쯤 열린 창문을 마저 닫았다. 동시에 창가를 두드리던 작은 소음도 멎었다. 좋기는 뭐가 좋다는거야, 겨우 잠들었는데 시끄럽게 깨우기나 하고.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묻으며 토니는 다시 잠을 청했다. 이 시간엔 아직 좀 더 자는게 맞았다.
 그러나 한 번 달아난 잠은 아무리 피곤한 상태여도 쉽게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옆으로 누워보고, 바르게 누워보고. 아예 뒤집어 누워보기도하며 잠들기위해 노력했으나 그럴수록 정신은 더 말똥말똥 해질 뿐이었다.


"...망할."


 결국 토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맨 발에 닿는 대리석의 서늘함에 소름이 돋았다. 이왕 잠깬거, 미뤄둔 일이나 해야겠다.


"메일 체크해줘. 급한거부터."
[yes,boss.]


 짧은 대답과 함께 곧 몇 개의 화면이 떠올랐다. 다음주에 있을 국제기구 컨퍼런스, 뉴욕에서 진행중인 과학 세미나 참석 여부, 경쟁사 입찰과 관련한 보고서 몇 개 … 화면을 옆으로 슥슥 넘기며 몇 가지 사안을 정리한 토니는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냉장고에서 꺼낸 생수를 병채로 한번에 반 이상 비웠더니 그래도 아까보다는 좀 낫다. 급한 불은 껐으니 나머지는 나중에 해도 되겠지. 심심해 뉴스나 볼까 하고 티비를 틀었지만 이 시간에 하는 뉴스라곤 앵간히 큰 사건이 터지지 않는 이상 어제 뉴스의 반복일 뿐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죽이느니 아까 조립하다 만 기계를 다시 손보는게 좋을 것 같아 늘어지게 하품을 한 토니가 티비를 끄려고 했을 때였다.


-우리의 스파이더맨이 또 활약을 했다죠? 이번엔 어떤 사건인가요?


 아나운서의 말과 동시에 오른쪽 상단 화면이 익숙한 거리를 비추었다. ATM강도인듯한 작자들 두엇이 자루를 지고 달리고 있었다. 영상은 하이라이트만 편집한 듯 곧 뒤에서 쏘아진 거미줄에 몸이 묶여 범인들이 잡혔고, 경찰과 악수를 나누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이 이어졌다.


"그래그래, 잘 하고 있군."


 다음에 또 칭찬이라도 해줘야겠어. 토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티비를 끄려고했다.


-새벽에도 쉼 없이 일하는 스파이더맨, 잠은 언제 자는 걸까요?


"새벽…?"


 그 말에 잠시 가라앉는가 싶었던 두통이 다시 몰려왔다. 이대로 가다간 청소년 노동법 위반으로 언제 재판에 회부될지 모른다. 물론 스파이디가 아직 열 다섯이라는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지만 그 극소수 중 누군가가 앙심을 품고 찌르기라도하면 귀찮아질건 안봐도 뻔했다. 이를테면 '아이언맨, 청소년 히어로에게 과도한 업무 종용. 이대로 괜찮은가.'같은 헤드라인이 걸릴지도 모르고.


"프라이데이, 저 사건 시간 언제야."
[베이비 모니터 검색.]


 프라이데이가 검색하는 그 짧은 순간동안 토니는 피고석에 앉아 '저는 스파이더맨에게 새벽에 히어로 활동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주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려낼 수 있었다. 아니, 이건 정말 아니지. 그렇잖아.


[새벽 두시 오십분이네요. 보스? 괜찮으신가요? 심박동이 20회정도 상승했는데요.]
"혹시 아직도 수트 입고 있어?"
[네. 연결해 드릴까요?]
"부탁해."


 사건을 해결했으면 당장 집에 가서 수트 벗고 잠이나 잘것이지, 왜 이시간까지 입고 있는거야. 아니, 그보다 그 시간에 ATM강도가 있는건 어떻게 안거지. 혹시 그대로 쓰러져 자는걸 깨우고 있는건 아니겠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일단 전화를 받으면 지금 뭐하고 있냐고 부터 물어야 겠…


[스타크씨? 이 시간에 왠일이세요? 아, 좋은아침이에요! 식사는 하셨어요? 아, 식사 물어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죠. 저는 숙모가 일어나면 어제 사온 샌드위치를...]
"워워워… 잠깐만 꼬맹이."


 토니는 자기도 모르게 피터가 눈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손을 들어올렸다. 전화 반대편의 피터는 아침부터 기운이 넘쳤다. 영상 기록대로라면 그 역시 세시간도 못잤을 텐데, 맥없이 누워있다시피한 토니와는 정 반대로 당장이라도 통통 튀어오를 것 같은 상태였다.


"내가 피곤해서 잘못들은게 아니라면 네가 몇 시간 전에 강도를 잡은것 같은데."
[벌써 보셨어요? 이야, 이번에 새로 143번 거미줄을 써봣는데 그게 또…]
"잠시만, 말 좀 하자."


 흥분한 피터를 진정시키느라 토니는 순간 자기가 왜 이시간에 전화를 걸었나 깜빡 할뻔했다. 그러나 곧 프라이데이가 띄워주었던 영상을 보고 할 말을 기억해냈다.


"자, 그럼 일단 사실 확인부터 하자. 강도를 검거한 건 잘한 일이야. 칭찬 받을 만한 일이지. 실제로 지금 칭찬하는거고. 그래 참 잘했어. 그런데 그 시간이 새벽 두시 오십분이라는것도 칭찬받을만한 일일까?"


 토니의 말에 화면 너머 스파이더 수트의 눈 조리개가 빠르게 수축이완을 반복했다. 당황했네, 당황했어. 토니의 한숨이 깊어졌다.


[아, 그러니까 그건. 네, 새벽에 잠이 깨서 물마시러 나갔는데요. 비명소리가 들려서, 음.]
"사건 현장은 네 아파트에서 열 블록 넘게 떨어진 곳이던데."
[… … 죄송합니다.]


 토니의 지적에 얼른 꼬리를 말고 추욱 늘어지는 것이 꼭 혼나는 강아지를 보는 것 같다.  


"어떻게 알고 나간거야?"

[네드에게 부탁해서 퀸즈 지역 경찰에 신고가 들어오면 수트에도 연결 되서 캐런이 알려주도록 설정을 해놨거든요.]


 가지가지 한다. 토니는 버릇처럼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릴렉스, 화 내면 안돼. 상대는 열 다섯살 꼬맹이다. 여기서 화 내면 어른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


[... 화나셨어요?]
"그래, 화났지. 아주 많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화를 꾹꾹 참으며 토니는 최대한 담백하게 대답했다.


"이런말 하는것도 우습지만 새벽 두시에 꼬맹이는 한참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란말야."
[하지만 제 친구들도 항상 밤 새는걸요. 네드나 미셸도...]
"네 친구들의 하루 일정같은건 관심 없어."


 자기만 밤샘으로 혼나는게 억울한지, 피터는 핀트가 엇나간 변명을 열심히 늘어놓았다. 그걸 자르는 것 역시 토니의 일이다.


"잘 들어 꼬맹이.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굉장히 고지식하게 들릴거라는거 알아. 지금 말하는 나도 엄청 꼰대같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그치만 아무리 히어로일지라도 열 다섯살은 새벽에 침대에 누워서 얌전히 자는게 맞다고. 어둑한 거리에서 위험하게 쏘다니느니 차라리 야동을 봐."

[보스, 마지막 말은 안하는게 나았을 것 같은데요.]


 팔자에도 없는 훈계를 하려니 아무말이나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토니는 얼굴을 감싸쥐었다. 프라이데이가 그쯤에서 멈춰준게 다행이었다.


"....그러니까 요점만 말하자면 저녁 9시 이후는 히어로 활동 금지다 꼬맹이. 난 청소년 노동법 위반으로 법정에 서고 싶지 않으니까."
[스타크씨! 그치만...]
"통화 종료."


 더 이상 길게 통화를 했다간 정말 무슨 소리를 하게 될지 알 수 없어 토니는 황급히 할 말을 끝내고 통화를 종료했다. 건너편의 피터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던 것 같지만 애써 무시하며 그가 한 일은 스파이더맨 수트의 AI를 재설정 하는 것이었다.


 녀석이 생각보다 똑똑해서 흐뭇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똑똑함이 말도못하게 귀찮아 지는 일도 많았다. 일단 녀석이 똑똑하니 주변에도 똑똑한 놈들 뿐이었다. 특히 절친이라는 녀석은 해킹에 아주 도가 터서 피터가 원하는대로 수트에 원래 있던 기능을 해금시켜 주거나 이것저것 유용한 기능을 달아주는 모양이었다. 만약 어벤져스의 다른 히어로가 이렇게 주체적으로 나섰다면 토니가 쌍수를 들고 환영했겠지만 이 경우는 좀 이야기가 달랐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틴에이지들은 토니에게 좀 버거웠던 것이다. 새로운 기능으로 무슨 사고를 칠지,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조금이라도 생각은 하는걸까. 아니, 당장 눈 앞에 펼쳐지는 0과 1의 향연에 그런건 안중에도 없을 터였다.


"프라이데이, 캐런 연결해서 수트 기능에 활동 정지시간 입력해."
[보스, 그렇게 말하니까 꼭 티비 못보게 하는 아빠 같은데요.]
"시끄러워."
[하지만 기능을 정지한다고해서 피터의 활동을 완전히 제한 할 수는 없어요.]
"그건 나도 알아. 그래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놓자 이거지."
[혹시 오후 9시 이후에 수트 기능이 필요하게 될 때는요?]
"그 때는 내 허가 하에 움직이는 걸로. 아, 그렇지. 해킹 시도 있으면 나한테 알려줘."


 그렇게 이 일은 일단락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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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귀가 아파요

글/MCU 2017. 7. 13. 15:51

 여느 때처럼 임무를 끝내고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일이 정리된걸 확인한 토니는 곧 바로 기지로 복귀하려했으나 꾸물대는 피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뭐가 문제야 꼬맹이."
"별거 아니에요. 먼저 가세요."
"별거아니긴. 그럼 귀는 왜 붙잡고 있는데?"


 성큼성큼 피터 쪽으로 다가가며 토니가 물었다. 아닌게 아니라, 아까부터 피터가 왼쪽 귀를 잡고 (수트 밖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울상을 짓고 있던 것이다.


"캐런, 이녀석 신체 스캔좀 해봐."
[yes,boss.]


 피터의 AI기도 하지만 창조주인 토니의 명령에 캐런은 순순히 그 지시를 따랐다. 진짜 괜찮은데..하고 중얼거리는 피터에게 캐런이 선고를 내렸다.


[왼쪽 고막이 파열됐네요. 병원에 가야겠는데요.]
"파열이요?"


 파열됐다는 사실 보다는 그 단어 자체에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뜬 피터를 보며 토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그런거야. 아까 바로 옆에서 폭탄이 터지면서 다친건가."
"어... 그러고보니 그 이후로 약간 좀 멍하다 싶긴 했는데."
"잠깐 수트좀 벗어봐."


 말은 벗으라고 하면서 토니는 스스로 피터의 수트를 말아 올렸다. 다행이 외상은 없는것 같다. 하지만 고막이 파열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토니 앞으로 쏟아질 메이의 무시무시한 비난을 생각하니 약간 골이 아파왔다. 피터의 숙모는 얼굴 뿐만 아니라 말빨역시 죽여주는 여자였던 것이다. 그런 생각에 한참 잠겨있을무렵, 피터가 우물우물 말을 걸어왔다.


"저기, 스타크씨?"
"응?"
"…간지러운데요."
"아."


 말랑하고 보송한 감촉에 자기도 모르게 계속 만지작거렸나보다. 토니는 헛기침을 하며 붉어진 피터의 귀에서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 둘 사이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역시 병원에 가보는게 좋겠죠?"
"그럴필요 없어. 기지에 상주하는 의사한테 보여주면 되니까. 캐런, 바로 수술이 필요할 정도는 아닌거지?"
[네, 가볍게 찢어진 정도에요.]
"그래 그럼 바로 기지로 돌아가자."
"저 그럼 당분간은 왼쪽 귀가 안들리는거에요?"


 걱정스럽게 다시 귀를 감싸며 피터가 물었다. 음, 하고 턱을 긁던 토니가 그럼 테스트해보자며 오른쪽 귀를 가리켰다.


"자, 그럼 오른쪽 귀를 막아봐."
"이렇게요?"


 아까와는 반대편 귀를 감싸며 피터가 묻자, 토니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예고도없이 토니의 옆모습이 가까워졌다. 뒤이어 그가 쓰는 향수 냄새가 따라왔고, 빳빳하게 잘 다린 와이셔츠 내음도 약간 난것 같다. 너무 갑작스러운데다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가 자신의 왼쪽 귀에 귓속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데 약간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뒤늦게 얼굴에 피가 몰려 터질듯 붉어진 피터의 얼굴을 보며, 토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오른손을 귀에서 떼어내며 물었다.


"뭐야, 안들리는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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