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쿄오도] 잊어버리다. 9

글/역전재판 2016. 3. 26. 00:43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있지…? 하고 몸을 일으키려다가 뒷통수에 느껴지는 강렬한 아픔에 눈을 찡그리고 말았다. 그래, 난 쿄우야씨를 대신해서 뭔가에 맞았었지. 그러고보니 쿄우야씨는…? 괜찮은건가? 불안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는데 병실 문이 열리고 거짓말처럼 쿄우야씨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나는 살짝 당황했다. 눈에 노기를 띈 그의 모습. 나에대한 기억을 잃은 후로 전혀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병실로 들어오더니, 큰 소리로 내게 화를 냈다.

"멍청아!! 걱정했잖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거야?! 죽기라도하면 어쩌려고 그랬어?"
"쿄, 쿄우야씨… 나는…"
"내가 그러면 고마워할 줄 알았어? 천만해!! 오히려 네 바보스러움에 화가 날 지경이야."

 꿈이구나. 나를 혼내는 쿄우야씨의 모습에서 나는 지금 이 순간이 꿈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눈물이 나와도 참지 않았다. 그동안 참았던 울음이 한번에 터진 듯,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내 앞에 있는 쿄우야씨가 있다는게 너무 좋아서, 그게 설령 꿈일지라도 너무 좋아서. 그래서 와락 그의 품에 안겼다. 

"보고싶었어요. 정말로, 보고싶었어요."
"… …이런 식으로 용서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마."

 그러면서도 그는 내 어리광을 받아준다. 너무도 오랜만에 안기는 그의 품. 그 속에서 아주 맘놓고 울어버렸다. 

"쿄우야씨가, 더 나빴, 어요. 흑… 왜, 왜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흑…"
"너… …"
"좋아한다고, 사귀어달라고 먼저 말한건, 쿄우야씨였잖아요. 흑. 근데, 근데 이게 뭐에요. 바보같아. 어흑. 나만 설레고. 나만 좋아하고. 쿄우야씨는 흑, 전혀… 전혀 기억 못하고. 그래놓고, 유학간다고나 하고."
"괜찮다며. 너도 나에게 좋을거라고…"
"진짜 바보에요? 아니면 바보인 척 하는거에요?!"

 바보같은 말에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고개를 들자 당황한 표정의 쿄우야씨가 있다. 바보. 진짜로 바보. 꿈에서도 바보인건 마찬가지구나. 항상 매사에 여유롭고 능숙한 그의 이런 표정을 볼 수 있는 것도 나만의 특권. 

"… … 몰랐어. 미안해."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나를 더욱 세게 안아주었다. 꿈이어도 좋다. 이 온기만으로 충분하니까. 마구 울었더니 서서히 졸려오기 시작했다. 이대로 쿄우야씨와 헤어지는건 싫은데. 내가 졸린걸 눈치챘는지 그가 귓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졸리면 자도 돼."
"자고 일어나면 가버릴 거잖아요."
"안갈게."
"거짓말. 날 기억하지도 못할거면서."

 그렇게 쏘아붙이자 쿄우야씨는 대답하지 못했다. 너무 심했나. 하지만 정말로 눈을 감았다 뜨면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가 있을게 사실이므로 굳이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조금 더 어리광을 부리기로 했다.

"대신 내가 잠들 때까지 안아줘요."
"그래. 그건 할 수 있겠다." 

 날 기억하는건 못하겠나보다. 그런 솔직함에 어이없어하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를 만나니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조금만, 조금만 더를 중얼거리며 그의 품에 머리를 묻었다. 귓가에 간질대는 그의 콧노래가 기분좋다. 이걸 듣는것도 마지막이겠지. 이제 남은건 내가 그를 정말로 보내는 일 뿐이구나. 점차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해가 다 지고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리고 당연스럽게도 병실은 비어있었다. 나는 가물가물한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붕붕 돌렸다. 역시나 쿄우야씨는 없구나. 잠시간의 꿈은 참으로 달콤해서, 현실을 잠시 잊게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잠시 멍하니 앉아있으려니 쿄우야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일어났어? 걱정했잖아. 지금 검사결과를 보고 오는 길이야."
 "아… … 네."
 "도대체 왜 그런거야? 크게 다칠뻔했잖아."
 "저도 모르게 몸이… 튀어나갔어요."
 
  쿄우야씨는 내 대답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옆에 앉아 조곤조곤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크게 다치진 않았고, 검사 결과에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조금 더 안정을 취하는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뒷통수가 얼얼한 것 말고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당장 퇴원을 한다고 했다간 쿄우야씨가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어떤 … 사람이었어요?"
"누구? 날 때리려고 했던 사람?"
"네."

 내 생각이지만 그건 동일범일거라는 예감이들었다. 예전에 쿄우야씨를 쳤던 사람도 결국은 잡지 못했으니까. 내 질문에 쿄우야씨는 괜히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예전에 맡았던 사건 피고인의 가족이었어."
"혹시 저번과 같은 사람이었어요?"
"응. 그렇다더라."

 그 사람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게 데이트를 하고, 저녁을 먹고. 그리고 여전히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겠지. 그 사람에게도 사정이 없는건 아니겠지만 미워지는건 어쩔 수가 없다. 

"나 때문에 다쳐서 미안해."
"사과를 받으려고 한건 아니에요."

 그렇게 말했지만 여전히 쿄우야씨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네가 일어나지 않는 동안 바보같은 생각을 했어."
 "뭔데요?"
 "보통 영화에서는 기억상실에 걸린 사람이 비슷한 충격을 받으면 기억이 돌아오거나 하잖아. 그런 일이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다면, 너 대신 내가 맞았다면 말야. 그랬다면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 … 그런건 다 픽션이라는거 알잖아요."
"그러게.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가 없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생각까지 했을까. 나는 그 말에 더는 뭐라고 덧붙일 수 없었다.
 
 "조금 지쳤나봐.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계속 쫓았으니까."
 "검사."
 "미안. 쓸데없는 소리를 했네. 푹 쉬어. 나중에 또 올게."
 
 그는 그렇게 말하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새 다시 조용해진 병실. 나는 다시 잘까, 하다가 내일 무단결근을 하면 난리가 날 것 같아 미누키에게 문자를 보내놓기로 했다. 그리고 쿄우야씨에 대한 생각은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그것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으므로.


 
  다음 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미누키가 쏜살같이 병원으로 달려왔다. 오자마자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혼낸건 말할것도 없다. 
  
"오도로키씨! 정말, 걱정했잖아요!!"
"미안해."
"전혀 안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해봤자 설득력 없다구요."

 미누키는 투덜투덜대며 얼마나 다쳤는지, 또 얼마나 더 병원에 있어야 하는지를 꼼꼼히 물어봤다. 과연 우리 사무소의 차기 소장님. 나는 오랜만에 편안한 기분이되어 미누키와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화살과도 같이 빠르게 지나가 어느덧 미누키가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힝, 조금 더 있고 싶은데."
"안돼. 어두워지면 위험하니까."
"오도로키씨는 꼭 파파같은 말만 하네요."
"어쩔 수 없는걸."
"그럼 다음에 또 올게요. 아, 그렇지. 파파가 오도로키씨가 심심할지도 모른다고 이거 전해주라고 하셨어요."

 미누키가 들고 온 쇼핑백을 넘겼다. 언뜻 속을 보니 예전에 봤던 사건 수사 기록들이다. 거기엔 예전에 쿄우야씨에게 돌려받았던 3권도 같이 들어있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미누키를 배웅했다. 뭐 심심풀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리고 며칠 후 병실에 들른 쿄우야씨의 표정이 묘하게 어두워서, 나는 주저하다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약간 고민하다가 안주머니에서 서류를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온통 영어로 써있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수속이 끝났다는 내용인 것 같다. 

"미국으로 떠날 날짜가 결정됐어."
"… …벌써요?"
"응. 5일 후."

 너무 빠르다.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쿄우야씨가 말했다.
 
 "될 수 있으면 빨리 떠나고 싶다고 말해뒀었거든. 나도 이렇게 빨리 수속이 끝날 줄 몰랐어."
 "그렇군요…"
 "네가 퇴원하는건 못보고 가겠다. 미안해."
 "아녜요. 그걸 기다리는게 더 이상한거죠."

 그에게 서류를 돌려주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나에게 할만큼 했다. 병원비도 모두 지불해주었고, 바쁜 와중에도 일부러 들러 내 얼굴을 보러 와주었다. 그렇게 잘해주었는데 내가 발목을 잡는건 말도 안돼지. 쿄우야씨는 내 대답에 조용히 웃으며 서류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예전에 내가 말했던거 기억해?"
"어떤거요?"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
"아… 그거요."
"정말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죄여왔다. 갑자기 이 말은 왜 하는 걸까. 나는 일부러 그와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고 애쓰며 애꿎은 침대 모서리만 죽어라 노려보았다. 쿄우야씨가 나에게서 무슨 대답을 기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로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할지 모르겠다. 가지 말라고 붙잡길 기다리는건 아닐테고. 조용한 침묵이 이어졌다.

"혹시 나한테 … 할 말 없어?"

 그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그와 시선을 맞췄다. 일부러 기회를 준 건지도 모른다. 나는 절대로 먼저 나서서 말하지는 않으니까. 몇일 전,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했던 생각들이 머리 속에 어지럽게 차올랐다. 하지만 그 수많은 생각들 중에서, 내가 입밖에 낼 수 있는건 단 하나도 없었다.

"검사라면 거기서도 잘 할거에요. 그러니까 걱정되지도 않네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마운걸."

 쿄우야씨의 얼굴에 약간 실망한 표정이 떠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건 내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음에도 없던 소리를 함으로써 그가 준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렸다. 머리가 아파온다. 베개에 머리를 묻자, 그가 나중에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나중이라. 출국 준비로 바쁜데 여기에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렇게 걱정했지만 쿄우야씨는 그 다음날도, 그 다다음날도 내 병실을 꼬박꼬박 찾아주었다. 그를 볼 때마다 하루하루 시간이 줄어가는게 확 실감이 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 뭐야? 아… 예전에 내가 빌려갔던 거구나."
"미누키가 가져다 준거에요."
"흐음. 좀 봐도 돼?"
"얼마든지요."

 쿄우야씨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파일을 넘겼다. 예전에 봤던거지만 기억을 못해서일까. 그나저나 이렇게 한가하게 놀고 있어도 되는건지 문득 걱정이되었다. 

"저, 검사. 출국 준비라던가 그런건 안해도 되요?"
"하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 … 정말 가는군요. 이제 이틀 남은거죠?"
"응. 그래서 말인데, 이젠 여기 못올것 같아. 오늘이 마지막."

 갑작스러운 통보에 나는 정신이 멍해졌다. 매일매일 찾아와 줬기 때문에 마지막 날에도 와주지 않을까 하는 바보같은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는 또 바보같은 말만 늘어놓았다.

"그, 그렇군요. 하긴 뭐 바쁜데 여기 자주 와준것만 해도 고마워요."
"내가 오고 싶어서 온거였으니까. 그리고 감사를 표해야 하는건 내쪽인걸."

 가지 말라고 하고 싶다. 계속 내 옆에 있어달라고 하고 싶다. 목 끝까지 차오른 그 말을 나는 끝내 뱉지 못했다. 쿄우야씨는 보고있던 사건 기록 파일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려나보다. 저 문을 열고 나가면 이젠 정말로 만날 수 없을테지. 나도 침대에서 내려왔다. 

"일부러 나올것까지는 없는데."
"아니에요. 배웅해주고 싶어요."
"그럼………"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반대편 손을 내밀어 그 손을 맞잡았다. 
 
 "그동안 고마웠어. 나 때문에 이것저것 귀찮았을텐데."
 "괜찮아요. 도움이 됐다면 기뻐요."
 "그럼 건강해. 또 이렇게 어디서 얻어맞고 다니지 말고."
 "안그럴거에요."

  이젠 다쳐도 이렇게 매일매일 병문안 와줄 사람도 없으니까. 쿄우야씨는 그래. 하고 웃으며 병실을 나갔다. 이젠 저 뒷모습도 볼 일이 없겠지. 그래서 나는 그가 시야에 사라진 후, 창문에 매달려서 조그만 점처럼 보이는 그의 모습을 눈에 새겨넣기 위해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안녕. 정말로 안녕.

 그리고 그 날 밤은 밤새도록 조용히 베개를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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