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나루] 아주 오래된 추억

글/역전재판 2016. 3. 26. 00:52



 화장실에서 나오다 문득 바닥에 굴러다니는 칫솔이 있어 집어들었더니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심플한 검은색의 얇은 손잡이. 뒤돌아보자 나루호도의 것은 자신의 것과 함께 얌전히 양치컵에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이 칫솔의 주인은 단 한사람 밖에 없다. 치히로. 그녀의 것이다.

약해질대로 약해진 시선에조차 잡히는 그녀의 추억.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그녀의 자취. 잊어가고 생각하고 있다가도 방심한 순간 튀어나오는 그녀와의 추억에 고도는 가슴이 쓰렸다. 어디에나 배어있는 그녀와의 기억 때문에 고도는 아직도 호시카케의 사무소로 돌아가지 못했다. 돌아가면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있던 그녀가 '왜 이렇게 늦었어요?'라고 화를 내며 나타날 것 같아서.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정신을 차리니 자신을 물끄러미 보고있는 나루호도가 있다. 고도는 머쓱해져 칫솔을 뒤로 숨겼다. 굳이 숨길 필요는 없었다. 그랬지만 왠지 이래야 할 것 같아서. 나루호도를 뒤로하고 고도는 방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서랍장의 맨 왼쪽 아래 서랍. 그 곳을 열자 그리운 내음이 풍겨왔다. 어쩌다 발견한 그녀의 물건을 모아놓는 서랍이다. 그녀가 놓고간 스카프, 팔찌, 기타 잡다한 물건들. 고도는 거기에 오늘 발견한 검은 칫솔을 넣어둔다. 그리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서랍을 천천히 닫는다.

 

 나루호도는 그 날 천천히 자신에게 안겨왔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다가, 결심이라도 한 듯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입을 열었다.

 

"고도씨. 역시 저로는 치히로씨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는 걸까요?"

"그 전제부터 틀려먹은거다 마루호도."

"?"

"사람의 빈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 있을리가 없잖아."

"......."

"그건 떠나간 사람에게도, 남은 사람에게도 실례니까."

 

 그 말에 나루호도는 얼마간 입을 열지 못했다. 차라리 나쁜 놈이라고 시원하게 욕이라도 해주면 좋을텐데. 하지만 나루호도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고도의 바이저를 벗기고 그 눈 위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까슬한 입술이 느껴진다. 고도는 얼마간 그대로 있다가, 나루호도를 살짝 밀어내고 그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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