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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피터] Time to sleep, spidy. 1
빗소리에 아침을 시작하는게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음, 글쎄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토니가 한 생각은 '참 별걸 다 좋아하는군.'이었지만. 뜬금없이 왜 흘러간 잡담을 곱씹고 있느냐하면, 토니 역시 빗소리에 눈이 떠졌기 때문일것이다. 흐릿한 시야에 얼굴을 찡그리자 어두운 실내가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시간이 가늠되질 않았다.
"프라이데이, 지금 몇 시지?"
[굿모닝 보스. 현재 시간은 AM 4:56입니다.]
기계를 조립하다 잠든게 2시 넘어서였으니 채 세시간도 제대로 못 잔셈이다. 부족한 수면을 호소하듯 머리가 아파왔다.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며 토니는 소음의 원인이었던 반쯤 열린 창문을 마저 닫았다. 동시에 창가를 두드리던 작은 소음도 멎었다. 좋기는 뭐가 좋다는거야, 겨우 잠들었는데 시끄럽게 깨우기나 하고.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묻으며 토니는 다시 잠을 청했다. 이 시간엔 아직 좀 더 자는게 맞았다.
그러나 한 번 달아난 잠은 아무리 피곤한 상태여도 쉽게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옆으로 누워보고, 바르게 누워보고. 아예 뒤집어 누워보기도하며 잠들기위해 노력했으나 그럴수록 정신은 더 말똥말똥 해질 뿐이었다.
"...망할."
결국 토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맨 발에 닿는 대리석의 서늘함에 소름이 돋았다. 이왕 잠깬거, 미뤄둔 일이나 해야겠다.
"메일 체크해줘. 급한거부터."
[yes,boss.]
짧은 대답과 함께 곧 몇 개의 화면이 떠올랐다. 다음주에 있을 국제기구 컨퍼런스, 뉴욕에서 진행중인 과학 세미나 참석 여부, 경쟁사 입찰과 관련한 보고서 몇 개 … 화면을 옆으로 슥슥 넘기며 몇 가지 사안을 정리한 토니는 소파에 털썩 주저 앉았다. 냉장고에서 꺼낸 생수를 병채로 한번에 반 이상 비웠더니 그래도 아까보다는 좀 낫다. 급한 불은 껐으니 나머지는 나중에 해도 되겠지. 심심해 뉴스나 볼까 하고 티비를 틀었지만 이 시간에 하는 뉴스라곤 앵간히 큰 사건이 터지지 않는 이상 어제 뉴스의 반복일 뿐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죽이느니 아까 조립하다 만 기계를 다시 손보는게 좋을 것 같아 늘어지게 하품을 한 토니가 티비를 끄려고 했을 때였다.
-우리의 스파이더맨이 또 활약을 했다죠? 이번엔 어떤 사건인가요?
아나운서의 말과 동시에 오른쪽 상단 화면이 익숙한 거리를 비추었다. ATM강도인듯한 작자들 두엇이 자루를 지고 달리고 있었다. 영상은 하이라이트만 편집한 듯 곧 뒤에서 쏘아진 거미줄에 몸이 묶여 범인들이 잡혔고, 경찰과 악수를 나누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이 이어졌다.
"그래그래, 잘 하고 있군."
다음에 또 칭찬이라도 해줘야겠어. 토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티비를 끄려고했다.
-새벽에도 쉼 없이 일하는 스파이더맨, 잠은 언제 자는 걸까요?
"새벽…?"
그 말에 잠시 가라앉는가 싶었던 두통이 다시 몰려왔다. 이대로 가다간 청소년 노동법 위반으로 언제 재판에 회부될지 모른다. 물론 스파이디가 아직 열 다섯이라는걸 아는 사람은 극소수지만 그 극소수 중 누군가가 앙심을 품고 찌르기라도하면 귀찮아질건 안봐도 뻔했다. 이를테면 '아이언맨, 청소년 히어로에게 과도한 업무 종용. 이대로 괜찮은가.'같은 헤드라인이 걸릴지도 모르고.
"프라이데이, 저 사건 시간 언제야."
[베이비 모니터 검색.]
프라이데이가 검색하는 그 짧은 순간동안 토니는 피고석에 앉아 '저는 스파이더맨에게 새벽에 히어로 활동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주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려낼 수 있었다. 아니, 이건 정말 아니지. 그렇잖아.
[새벽 두시 오십분이네요. 보스? 괜찮으신가요? 심박동이 20회정도 상승했는데요.]
"혹시 아직도 수트 입고 있어?"
[네. 연결해 드릴까요?]
"부탁해."
사건을 해결했으면 당장 집에 가서 수트 벗고 잠이나 잘것이지, 왜 이시간까지 입고 있는거야. 아니, 그보다 그 시간에 ATM강도가 있는건 어떻게 안거지. 혹시 그대로 쓰러져 자는걸 깨우고 있는건 아니겠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일단 전화를 받으면 지금 뭐하고 있냐고 부터 물어야 겠…
[스타크씨? 이 시간에 왠일이세요? 아, 좋은아침이에요! 식사는 하셨어요? 아, 식사 물어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죠. 저는 숙모가 일어나면 어제 사온 샌드위치를...]
"워워워… 잠깐만 꼬맹이."
토니는 자기도 모르게 피터가 눈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손을 들어올렸다. 전화 반대편의 피터는 아침부터 기운이 넘쳤다. 영상 기록대로라면 그 역시 세시간도 못잤을 텐데, 맥없이 누워있다시피한 토니와는 정 반대로 당장이라도 통통 튀어오를 것 같은 상태였다.
"내가 피곤해서 잘못들은게 아니라면 네가 몇 시간 전에 강도를 잡은것 같은데."
[벌써 보셨어요? 이야, 이번에 새로 143번 거미줄을 써봣는데 그게 또…]
"잠시만, 말 좀 하자."
흥분한 피터를 진정시키느라 토니는 순간 자기가 왜 이시간에 전화를 걸었나 깜빡 할뻔했다. 그러나 곧 프라이데이가 띄워주었던 영상을 보고 할 말을 기억해냈다.
"자, 그럼 일단 사실 확인부터 하자. 강도를 검거한 건 잘한 일이야. 칭찬 받을 만한 일이지. 실제로 지금 칭찬하는거고. 그래 참 잘했어. 그런데 그 시간이 새벽 두시 오십분이라는것도 칭찬받을만한 일일까?"
토니의 말에 화면 너머 스파이더 수트의 눈 조리개가 빠르게 수축이완을 반복했다. 당황했네, 당황했어. 토니의 한숨이 깊어졌다.
[아, 그러니까 그건. 네, 새벽에 잠이 깨서 물마시러 나갔는데요. 비명소리가 들려서, 음.]
"사건 현장은 네 아파트에서 열 블록 넘게 떨어진 곳이던데."
[… … 죄송합니다.]
토니의 지적에 얼른 꼬리를 말고 추욱 늘어지는 것이 꼭 혼나는 강아지를 보는 것 같다.
"어떻게 알고 나간거야?"
[네드에게 부탁해서 퀸즈 지역 경찰에 신고가 들어오면 수트에도 연결 되서 캐런이 알려주도록 설정을 해놨거든요.]
가지가지 한다. 토니는 버릇처럼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릴렉스, 화 내면 안돼. 상대는 열 다섯살 꼬맹이다. 여기서 화 내면 어른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
[... 화나셨어요?]
"그래, 화났지. 아주 많이."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화를 꾹꾹 참으며 토니는 최대한 담백하게 대답했다.
"이런말 하는것도 우습지만 새벽 두시에 꼬맹이는 한참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란말야."
[하지만 제 친구들도 항상 밤 새는걸요. 네드나 미셸도...]
"네 친구들의 하루 일정같은건 관심 없어."
자기만 밤샘으로 혼나는게 억울한지, 피터는 핀트가 엇나간 변명을 열심히 늘어놓았다. 그걸 자르는 것 역시 토니의 일이다.
"잘 들어 꼬맹이.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굉장히 고지식하게 들릴거라는거 알아. 지금 말하는 나도 엄청 꼰대같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그치만 아무리 히어로일지라도 열 다섯살은 새벽에 침대에 누워서 얌전히 자는게 맞다고. 어둑한 거리에서 위험하게 쏘다니느니 차라리 야동을 봐."
[보스, 마지막 말은 안하는게 나았을 것 같은데요.]
팔자에도 없는 훈계를 하려니 아무말이나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토니는 얼굴을 감싸쥐었다. 프라이데이가 그쯤에서 멈춰준게 다행이었다.
"....그러니까 요점만 말하자면 저녁 9시 이후는 히어로 활동 금지다 꼬맹이. 난 청소년 노동법 위반으로 법정에 서고 싶지 않으니까."
[스타크씨! 그치만...]
"통화 종료."
더 이상 길게 통화를 했다간 정말 무슨 소리를 하게 될지 알 수 없어 토니는 황급히 할 말을 끝내고 통화를 종료했다. 건너편의 피터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던 것 같지만 애써 무시하며 그가 한 일은 스파이더맨 수트의 AI를 재설정 하는 것이었다.
녀석이 생각보다 똑똑해서 흐뭇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똑똑함이 말도못하게 귀찮아 지는 일도 많았다. 일단 녀석이 똑똑하니 주변에도 똑똑한 놈들 뿐이었다. 특히 절친이라는 녀석은 해킹에 아주 도가 터서 피터가 원하는대로 수트에 원래 있던 기능을 해금시켜 주거나 이것저것 유용한 기능을 달아주는 모양이었다. 만약 어벤져스의 다른 히어로가 이렇게 주체적으로 나섰다면 토니가 쌍수를 들고 환영했겠지만 이 경우는 좀 이야기가 달랐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틴에이지들은 토니에게 좀 버거웠던 것이다. 새로운 기능으로 무슨 사고를 칠지, 그것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조금이라도 생각은 하는걸까. 아니, 당장 눈 앞에 펼쳐지는 0과 1의 향연에 그런건 안중에도 없을 터였다.
"프라이데이, 캐런 연결해서 수트 기능에 활동 정지시간 입력해."
[보스, 그렇게 말하니까 꼭 티비 못보게 하는 아빠 같은데요.]
"시끄러워."
[하지만 기능을 정지한다고해서 피터의 활동을 완전히 제한 할 수는 없어요.]
"그건 나도 알아. 그래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해놓자 이거지."
[혹시 오후 9시 이후에 수트 기능이 필요하게 될 때는요?]
"그 때는 내 허가 하에 움직이는 걸로. 아, 그렇지. 해킹 시도 있으면 나한테 알려줘."
그렇게 이 일은 일단락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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