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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만우절 거짓말 3
미유키는 급변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쓰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대부분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가령, 사와무라의 볼 상태가 급변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고 치자. 그렇다면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구위가 떨어졌나?' 혹은 '컨트롤이 엉망인가?'하는 생각들 일것이다.. '구속이 갑자기 150이 나오기라도 한거야?'하는 생각은 보통 들지 않겠지. 그런 의미의 싫음인 것이다. 그러니 관계의 급변을 좋아할리가. 미유키는 방과 후 자신을 불러낸 후배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귀를 울리는 늦여름. 사와무라와 미유키의 관계는 조금 변하려 하고 있었다.
"무슨일이야? 별 일 아니라면 불펜에서..."
"불펜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그래, 그렇겠지. 일부러 자신을 여기까지 불러낸거라면 시시한 이야기가 아닐 터였다. 문득 탈의실 벽에 붙어있는 코시엔 대전표가 눈에 들어왔다. 세이도의 이름을 따라 올라가자 어느 덧 포스터의 맨 윗쪽까지 시선이 따라갔다. 코시엔 결승. 현실감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3일 후, 미유키와 사와무라에게 닥칠 현실이었다. 그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일단은) 애인인 후배로부터의 호출이라. 미유키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와무라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든 고개를 끄덕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찌됐든 지금의 이 상태를 만든건 자신이니까.
"저기, 3일 후의 결승 말인데요."
"응."
"경기에서... 이기면."
"이기면?"
드물게 우물쭈물하는 사와무라의 귀가 새빨갛다. 미유키는 금방이라도 날아올 것 같은 폭탄을 피하기위해 짧게 심호흡을 했다. 자, 준비는 됐다. 뭐든지 던져보라고.
"키.....스 해 주십쇼."
"....."
그 말에 미유키는 금방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음, 생각한 것보다는 가벼운 내용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폭탄이 아닌건 아니지만. 아직까지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은 없지만 미유키는 자신을 스트레이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이 연애놀이가 끝나면 언젠가는 여자친구를 사귀고 가정을 꾸릴거라는 막연한 생각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후배의 키스 요청에 자기도 모르게 잠시간 답을 주저했던 것이다.
"...안될까요?"
조용한 미유키의 반응에 사와무라가 그의 눈치를 살폈다. 얼굴 가득 '역시 말하지 말 걸 그랬어.' 하는 후회가 가득하다. 멍해져있던 미유키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났다. 그에게는 처음부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이 시작한 연극이다. 끝까지 마무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미유키는 손을 뻗어 언제나처럼 사와무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라락하고 손 안에서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며 다른 손으론 사와무라의 허리께를 살짝 끌어안았다. 이런 스킨쉽은 처음인지라 품 안의 사와무라가 당황하는게 느껴져 왠지 즐거워졌다.
"안 될 이유가 없지."
아, 난 진짜 지옥에 떨어질거야.
경기 날 아침. 사와무라는 그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았다. 특히 요 삼일 간의 컨디션은 세이도에 입학한 이래로 최고라고 꼽을 수 있었다. 적어도 미유키가 보기엔 그랬다. 불펜에서의 공은 평소보다 씽씽 내달렸고, 항상 무르다고 핀잔 주었던 컨트롤마저도 더욱 날카로와졌다. 게다가 오늘의 선발까지. 그야말로 감투에 날개까지 달아준 셈이라고 해야할까. 버스에 오르는 내내 쉴새 없이 조잘거리는 녀석을 보며 미유키는 안심했다. 여느 때와 같은 사와무라다. 작전을 짠다는 핑계로 나란히 옆에 앉아 경기장으로 이동하는 내내, 미유키는 살며시 사와무라의 손을 잡아주었다. 투수의 컨디션을 위해서라면 포수인 미유키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 먹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구장에 나서기 전, 오랜만에 구호를 외쳤다. 오늘 여기서, 우리는 정점에 선다.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경기에 나가는 아홉과 벤치에 앉아있는 선수들. 그리고 스탠드에서 응원하는 세이도 전원이.
이 시합만 끝나면 좋든 싫든 미유키는 은퇴하게 된다. 은퇴전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것은 먼 이야기. 지금은 눈 앞의 시합에 집중하기로 했다. 시합은 수비부터 시작된다. 선발인 사와무라와, 주전 포수인 자신. 외야로 달려나가는 동료들의 뒷모습을 보며 사와무라는 꿈쩍도 안하고 있었다.
"뭐야, 이제와서 긴장한거야?"
"아뇨, 딱히 그런건 아니고."
"그럼 왜?"
그 질문에 사와무라는 씨익 웃었다. 그리곤 살짝 상기된 얼굴로 미유키에게 말했다.
"약속, 잊지 마세요."
그리곤 뭐가 그렇게 좋은지 마운드까지 펄쩍펄쩍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미유키는 천천히 배터박스 쪽으로 향했다. 좋으나 싫으나 몇 시간 후에는 닥치게 될 일이다. 그렇다면 후회가 남지 않게 하자. 그 다짐과 동시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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