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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세이도 야구부 - 문제편
전통있는 학교에는 으레 그렇듯, 세이도에도 7대 미스터리라던가 괴소문들이 여러가지 있었다. 목 없는 여학생이 연주하는 피아노라던가,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한 명씩 사라지는 교우들 이야기라던가. 항상 사람들에게 둘러쌓여있는 사와무라는 자연스럽게 그것들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많았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사와무라는 '하하, 그런 것 따위 다 헛소문이지 뭐.'하고 능청을 떨었지만 실상은 무서워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랬다. 사와무라 사와무라는 괴담에 약했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가 여름 밤마다 들려주던 귀신들의 이야기는 어김없이 꿈에 나왔고, 사와무라는 밤새 그것들에게 쫓기며 시달렸다. 지어낸 이야기임을 알지만서도 무서운걸 어쩌랴.
때문에 사와무라에게 지금 상황은 굉장히 불편하고 꺼림칙했다.
".... 그래서말야, 12시가 지나면 배트를 휘두르는 귀신이 나타나는데.."
하룻치는 어떻게 저런 천연덕 스러운 얼굴로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걸까. 오늘따라 유난히 눈을 가린 앞머리가 길어보이는건 내 착각일까. 손전등은 왜 얼굴 밑에 대고 있는거야. 사와무라는 울고싶은 심정이었다.
어느 늦은 여름 밤, 쿠라모치가 자리를 비운 5호실에 하루이치와 후루야가 놀러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판기 앞에서 멍때리고 있는 후루야를 하루이치가 데려온거지만. 내일이 오프인지라 쿠라모치가 미유키의 방에서 밤새고 올거라고 했기에 베개도 가지고왔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오늘 5호실에서 1학년 궐기대회가있대.'라고 이상하게 소문이 부풀려져서, 저녁식사 후 5호실에는 1학년들로 만원이었다. 먹고, 마시고(물론 음료수), 까불고 놀다보니 시간은 어느 덧 자정에 가까워져 하나 둘 돌아가기 시작해 결국 남은건 처음 왔던 하루이치와 후루야. 그리고 토죠와 카네마루, 방 주인 사와무라. 이렇게 다섯이었다.
"너희도 자고가게?"
"왜? 안되냐?"
"아니아니, 사람은 많을 수록 좋지."
환상적인 실력의 1p플레이어 하루이치와, 보고있는 것조차 괴로워지는 실력의 2p플레이어 후루야의 카트대결을 구경하다 잠자리로 들어간게 새벽 세시. 불을 끄고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5호실의 한가운데에 누워있던 하루이치가 갑자기 툭 말을 던졌다.
"....그런데말야, 혹시 그거 알아?"
사와무라의 동물적 감이 '어서 하루이치의 입을 막아!!'하고 외치고 있었으나 이미 하루이치는 이야기를 시작한 후였다.
"세이도 야구부 괴담."
그것은 여러종류의 괴담을 귀가 닳도록 들었던 사와무라도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결국 방에 굴러다니던 손전등이 켜지고, 하루이치를 중심으로 둥글게 앉은 1학년 다섯명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누구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지대한 관심에 하루이치는 처음엔 얼굴을 붉혔지만 곧 목소리를 가다듬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형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히익, 형님이?"
"시끄러워 사와무라."
이야기의 출처가 료스케라니, 괴담에 한층 더 공포가 실렸다.
"20년 전, 야구부가 코시엔에 6년 연속 가지 못한 때가 있었대. 그 때는 도쿄에서 세이도가 야구 원탑이었던 때라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기자며 팬들이며 꽤나 분노했던 모양이야. 당연히 4번타자이자 주장이었던 선수에겐 큰 부담이었고.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심하게 내려앉고, 매일 같이 늦게까지 남아서 연습을 계속하는데... 오버워크라고 다들 말렸는데도 계속한 모양이야. 그렇게 두 달이 흘렀지... 그러다 결국 일이 터졌어."
꿀꺽하고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5호실은 하루이치가 이야기하는 소리를 제외하면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사와무라는 뒤집어쓴 이불을 더욱 힘 줘 잡았다.
"어느 날 아침, 주장이 연습에 나오질 않는거야. 그 동안의 오버워크가 누적이 되서 크게 앓아누운거지. 당시 여름 본선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졌던 감독은 주장을 크게 혼냈고, 팀원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터져나왔어. 그리고 그날 밤."
그날 밤, 하루이치는 그 말에 꾹꾹 힘을 줬다. 그 귀신같은 타이밍에 이야기를 끊고 하루이치가 주변에 앉아있던 친구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이불에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진 않지만 부들부들 떨고있는 사와무라, 그 옆에서 식은땀 한줄기 흘리고있는 카네마루. 흥미진진한 표정의 토죠와 드물게 또랑또랑한 눈을 하고 있는 후루야. 각기다른 네 명의 표정을 확인한 하루이치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야구용구실에 비품을 가지러갔던 매니저의 비명이 터져나왔어."
"히익."
"그래서? 주장이 설마?"
"책임감을 이기지 못한 주장이 결국 자살을 한거야."
"으아아아아!"
"사와무라군이랑 후루야군이 타이어 끌 때 쓰는 그 튼튼한 끈 있지? 그걸로 목을 세 번 빙빙 돌려서 가장 윗쪽의 선반에 매달고 얼굴엔 자기가 즐겨쓰던 포수 마스크를 쓰고선...."
"그만해 하룻치이이이!!!!"
"새파랗게 질려서 눈은 하얗게 까뒤집어져서는..."
"그만하라고 했잖아아아아!!"
"이렇게 팟!하고!!!!"
하루이치가 손전등을 다시 얼굴 밑에 가져다댔다. 기다란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왼쪽 눈동자를 하얗게 뜬 하루이치가 손전등을 껐다 켜자, 이불 안쪽에서 사와무라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그 뒤부터 야구부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어."
"아직 안끝난거야....?"
무서운건 사와무라뿐만이 아니었는지, 카네마루도 간절한 얼굴이 되어 하루이치를 바라보았다. 그 질문에 하루이치는 그저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을 뿐.
"새벽 한시에, 늦게까지 남아서 연습하던 에이스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기숙사로 달려온거야. 그리곤 말을 더듬으면서 '주장이, 주장이!!!!'이 말만 반복하더래."
"으으으...."
"배팅 존에 죽은 주장이 연습하고 있다면서, 계속해서 구령 붙이는 소리가 난다는거야. 하나, 둘. 하나, 둘..... 몇 시간이고 계속. 처음엔 에이스도 부원 중 하나가 열심히 연습을 하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그 목소리는 한번도 쉬지를 않는거야. 단 한번도. 이상하게 생각해서 에이스가 가까이 가서 들어보니 죽은 주장의 목소리가 들렸던거지."
"하룻치, 제발 그만해줘.....제발."
"에이스가 자기도 모르게 '주장...?'하고 물어봤더니."
"..봤더니?"
"그 목소리가 뚝 끊기더라는거지. 하지만 계속해서 배트 휘두르는 소리가 나더래. 에이스는 너무 무서워져서 차마 안까지는 확인하지 못하고 기숙사로 달려온거고."
이제 토죠만이 하루이치에게 바싹 다가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사와무라는 침대에서 훌쩍거린지 오래고, 카네마루도 한계치를 넘었는지 양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물론 그런다고해서 안들리지는 않는것 같았지만. 후루야는 쿠라모치가 경품으로 타온 곰인형을 끌어안고 벽을 보고 돌아앉아있었다. 하루이치는 이런 친구들의 반응이 썩 맘에 들었는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몰입해서 더욱 이야기를 풀어냈다.
"소문은 입에서 입을 타고 커졌대. 그리고 그와 더불어 여기저기서 주장을 봤다는 제보자가 속출했고. 이를테면 비가 오는 늦은 밤, 남아서 정리를 하던 야구부원이 야구용구실에서 자기 머리 위에서 덜렁덜렁 거리는 주장의 발을 봤다는 이야기라던가. 미팅실에서 한 밤중에 티비가 팟 하고 켜지더니 코시엔에 진출하지 못했던 해의 마지막 경기가 몇 시간이고 이어진다던가. 아, 주장은 살아생전 치킨마요맛 주먹밥을 제일 좋아했는데 매니저들이 주장이 죽은 이후로는 그 맛을 만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저녁 간식시간에 치킨마요맛 주먹밥이 수십개씩 나오는 일도 있었고."
"....치킨마요."
"결국 사건은 당시의 감독과 부원 전체가 주장의 무덤에 가서 사과하는 걸로 무마됐대. 다음 해에는 다시 코시엔에 나가게 됐고."
"해결되긴 한거구나."
"응. 그 뒤로는 주장을 봤다는 사람도 없었어..... 하지만 잊을만하면 그 주장의 귀신이 나타난대. 언제 나타나냐면..."
"코미나토, 이제 그만 해라."
카네마루가 거의 울상이 되서 하루이치의 어깨에 매달렸다. 그러나 그정도로 이야기를 끝낼 하루이치가 아니었다.
"이 시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건 좀 그렇지만, 주장의 귀신이 나타나는건 코시엔행이 좌절됐을 때라고 해. 그것도 6년 주기로말이지."
"잠깐, 잠깐만 하룻치."
그 때까지 훌쩍이기만 하던 사와무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커다란 황금 빛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사와무라 뿐만이 아니라, 카네마루도, 토죠도, 그리고 돌아앉은 후루야도 같았다. 하루이치를 제외한 넷은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4번 타자."
"주장."
"6년 째 좌절된 코시엔행."
"...포수."
네 사람이 차례로 키워드를 뱉어냈다. 그리고 그 네 가지 단서가 가리키는건, 사와무라가 아는 한 세이도 야구부에 단 한사람 밖에 없었다.
"미유키 카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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