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세이도 야구부 - 해결편 1

글/다이에이 2016. 3. 25. 22:45


"아냐, 어쩌다보니 이렇게 잘 맞아떨어진 것 뿐이지 그게 꼭 주장에게 닥칠거라곤..."

 

 하루이치가 사와무라를 진정시키려는 듯 어깨를 잡아 눌렀으나 사와무라에겐 이미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흥분한 사와무라의 머릿 속에서 저 일련의 시련이 앞으로 미유키에게 닥칠 것이라 이미 확정 지어진 듯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미유키를 지킨다!!"

"....?"

"어째서 그런 결론이...?"

"그보다 네 놈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까 기분이 이상한데."

 

 이상한 곳에서 스위치가 들어간 사와무라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뺀 하루이치의 뒤로 후루야가 응응, 하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는게 보였다. 카네마루는 그런 둘을 보면서 한숨을 쉬고, 토죠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뭐 조심해서 나쁠건 없지.'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 어쨌든 시간은 늦었고, 이 방에 남은건 내일이 오프임에도 변함없이 연습을 할 야구바보들 뿐인지라 하루이치는 이제 그만 자자며 손전등을 껐다.

 

 다음 날, 평소보다 조금 늦잠을 자버린 사와무라는 허겁지겁 일어나 후루야를 깨웠다. 사와무라가 후루야를 깨운 건, 방에 다른 세 녀석이 없었기 때문이기도했다. 후루야까지 없었다면 아마 어제의 그 괴담회가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깨끗하게 치워진 방. 사와무라는 소름이 오소소 돋는걸 느끼며 자고있는 후루야의 어깨를 계속해서 흔들었다. 결국 일어나지 않는 후루야의 품에서 곰인형을 빼앗고서야 둘은 방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침 식사시간보다 조금 늦었는지, 선배들이 우르르 식당 밖으로 나오고 있는게 보였다. 그 무리에 있던 마에조노가 멀뚱히 서있는 둘을 발견하곤 멀리서 말을 걸었다.

 

", 둘이서 왠일로 같이 있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슴다."

"밥 얼마 안남았으니까 빨리 먹어라. , 쿠라모치가 너 찾는거 같던데?"

 

 같은 방에 있으니 딱히 찾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만나질텐데 무슨 일이지. 사와무라는 고개를 갸웃하며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미리 와있던 하루이치와 카네마루가 손을 들어 둘을 반겼다. 저 녀석들은 의리도없게 먼저 가버릴건 뭐야. 후루야는 하루이치에게 할 말이 있는지 그 쪽으로 가버렸고, 사와무라는 항상 하는 그대로 자신의 지정석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는데,

 

없다.

지정석이 없다.

 

 지정석이 없는게 무슨 말인가하면, 평소 사와무라의 식당에서 앉는 지정석은 미유키의 옆자리인 것이다. 그러니 지정석이 없다는건 식당에 미유키가 없다는 것과 같았다. 평소라면 먼저 가버렸나~ 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어제 하루이치에게 들었던 괴담이 사와무라의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 것이었다. 그 때, 부들부들 떨며 식판을 들고 이리저리 헤매는 사와무라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 사와무라. 이리 좀 와봐."

 

 반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쿠라모치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마에조노가 쿠라모치가 자길 찾고 있다고 그랬었지. 사와무라는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쿠라모치의 옆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보니 쿠라모치의 옆에서 밥을 먹는건 처음인 것 같다.

 

"선배, 어제 저 없이 잘 주무셨슴까? 역시 남의 방은 불편하죠?"

"너야말로 우리 방에서 뭘한거야 임마."

"깨끗이 치웠으니까 문제 없지 않슴까."

"니가 치운것도 아니면서."

 

 쿠라모치는 툴툴거리면서 반쯤 남은 밥을 크게 한숟갈 입에 퍼넣었다.

 

"그러고보니 왜 오라 그런검까?"

"네놈이 미유키 찾느라 얼빠진 표정짓고 있는게 못나보여서 그랬지."

"얼빠진 표정 지은 적 없슴다!!"

"지금도 얼빠진 표정인데 뭐."

 

 사와무라가 씩씩대면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쿠라모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캬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오프 날의 식당은 확실히 한적했다. 통학파인 사람들 중에는 아예 등교를 하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 같았고, 기숙사에 거주중인 사람 중에는 간만의 휴일이니 밖으로 나가서 끼니를 해결하려고 식당에 들르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았다.

 

"너 오후에 미유키랑 피칭 연습 할거지?"

"물론임다."

"이번 주말엔 못하지 않을까."

"? 그게 무슨 소림까."

"미유키녀석, 오늘 집에 간다 그랬거든."

 

 순간 컥, 하고 사레가 들렸다. 가슴을 두들기는 못난 후배에게 쿠라모치는 친절하게도 물을 가져다주었다. 물 한잔을 다 마시고 두번째 잔의 반을 담숨에 비운 사와무라가 숨을 돌리자마자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임까!"

"무슨말이긴, 오프니까 집에 갈 수도 있는거지."

"아니 그치만...."

 

 사와무라가 알고있는 미유키는 오프에도 집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와무라가 알고있는 미유키니까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을테지. 쿠라모치는 턱을 괴고 간만에 진지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간만에 아버지에게 보고라도 하러 간게 아닐까."

"흐음....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와무라가 그렇게 말하자 쿠라모치는 심각해지지 말라며 사와무라의 머리를 사정없이 흐트려놓았다.

 

"그리고 여기서 미유키 놈의 전언."

"? 유언이요?"

"멍청아, 전언. 전언 몰라?"

 

 심각한 분위기를 단번에 무너트리는 사와무라의 발언에 쿠라모치가 짜증을 냈다. 게다가 유언이란 말에 반대편 테이블에 있던 후루야가 달려왔다. 뒤에서 간절하게 부르는 하루이치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기도 했으나 후루야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미유키 선배의 유언..."

"그러니까 유언이 아니라니까! 하여간 이 바보들을 어떡하면 좋냐 진짜!"

"어떡하냐 후루야, 우리가 손을 쓰기도 전해 미유키가 당해버렸나봐..."

 

 사와무라의 말에 후루야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쿠라모치는 더 이상 태클을 걸 기력도 없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둘 다한테 해당되는 말이니까 한 번만 말한다. '내가 없는 동안 오버워크 하지 말 것.' 이게 미유키 놈의 전언이다."

"그게 담까?"

"그래. 어차피 말해도 듣질 않겠지만 일단은 말해두라고..."

"어떻게 우리만 생각할 수가 있슴까... 적어도 죽기 직전만이라도 자기를 생각하라고 미유키 카즈야...."

".. 오버워크 ... 안하기... 유언."

", 이제 지친다 진짜....."

 

 쿠라모치는 하루이치에게 뒷 일을 맡겨버리곤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국 울상이 된 둘을 식사가 끝나자마자 하루이치가 구슬려서 일으켜 세웠다.

 

"야 후루야, 이제 우리 공은 누가 받지...? 오노선배?"

"...카리바?"

"그게 아니야 둘 다. 주장은 그냥 외출 나간것 뿐이라구."

 

 결국 그 날은 오노 선배도, 카리바도 연습에 나타나지 않아 둘은 타이어를 매달고 주구장창 런닝밖에 할 수 없었다. '오버워크는 하지 말 것. '그 말을 지키기위해 체간 운동도 하지 않았다. 후루야와 사와무라는 하루이치의 노력 끝에 결국 그것이 유언이 아닌 단순한 전언이었다는건 이해했지만, 그럼에도 불길한 느낌까지 사라지는건 아니었다.

 

"안되겠어, 오늘 밤은 작전 회의다."

"...작전 회의?"

 

 시합도 아닌데? 그런 얼굴을 하고 있는 후루야에게 사와무라가 가슴을 팍 쳤다.

 

"이런 중요한 시국에 주장이 빠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구. 미리 대책을 세워놔야지!"

 

 후루야는 그 말에 왠지 감동한 듯한 표정이 되었다. 하루이치는 그런 둘을 보며 저 회의에 같이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듯한 얼굴이 되었지만, 자긴 할만큼 했다고 생각했는지 목욕 후 둘에게 이별을 고했다.

 

", 그럼 둘이 작전 회의 열심히 해."

"우왓 하룻치, 저런 배신자! 넌 세이도의 미래가 걱정되지도 않냐!"

"적어도 쓸데없는 걱정은 안한다고 생각해..."

 

 그리곤 뒤도 안돌아보고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결국 사와무라는 한껏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후루야를 데리고 5호실로 돌아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TV를 보고있던 쿠라모치가 돌아보다가 사와무라 뒤에 따라들어오는 후루야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얜 또 왜 데려와? 아침부터 철썩같이 붙어 다니더니, 둘이 사귀냐?"

"무슨 그런 무서운 농담을. 저희는 지금 세이도의 안녕을 위한 동맹관계를 구축중이라구요."

"네가 그런 어려운 말을 쓰는것 보니 어딘가 단단히 아픈 모양이구만..."

"그런고로 후루야는 오늘 여기서 자고 갈검다! 어차피 마스코선배 침대 비어있잖슴까!"

"나야 뭐 상관 없다만."

 

 게임할래? 그렇게 물었지만 둘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저 엉뚱한 녀석들이 또 무슨 일을 벌일까 싶어 쿠라모치는 게임을 하는 척하며 힐끗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미유키에게 부탁 받은 것도 있고 해서 틈틈히 지켜본 결과 오버워크는 하지 않은 모양인데, 대신 남아도는 에너지로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건 아닌가하는 걱정이 들었다. 저 녀석들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아아, 세이도의 투수진의 미래가 걱정되어 미칠 것 같다. 탄바선배, 돌아와 주세요.

사와무라와 후루야는 나름 심각했다. 노트를 펼쳐놓고 어제 하루이치가 말했던 괴담의 포인트를 일렬로 주욱 적어내린 후, 마지막에는 미유키 카즈야라는 이름을 적어냈다. 역시 너무 똑같아...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겹치는 단서가 너무 많다. 그리고 오늘, 연습에 나오지 않은 부분. 사와무라는 이것이 시작이라며 볼펜으로 톡톡 두들겼다.

 

"애초에 그 이야기의 시작이 주장이 연습에 나오지 않은 것부터였잖아?"

"...하지만 오늘은 오프잖아."

", 네 말이 맞아. 일단 주말엔 지켜보는거야. 그리고 월요일에도 안나오면..."

 

 주말엔 지켜볼 것. 사와무라가 그렇게 날려쓰자, 후루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장이 연습을 나오지 않음, 그 밑에 적혀있는 아픈 주장이라는 글자를 후루야가 가리켰다.

 

"아프지 않는지... 지켜봐야해."

"그러게, 그거 중요하지. 내일 몇시쯤에 오지? 쿠라모치 선배, 낼 미유키 선배 몇 시에 오는지 암까?"

"내가 그딴걸 어떻게 아냐. 그보다, 뭘 하고 있는거야."

 

 결국 쿠라모치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와무라의 침대 위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선배도 암까? 세이도 야구부괴담."

"? 그게 뭔데?"

"코시엔에 6년째 나가지 못해 자살한 주장의 이야김다..."

"아아, 그건가."

 

 쿠라모치는 사와무라의 말에 작년 여름을 떠올렸다. 그래, 작년 이맘때쯤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그 때 뭣도 모르고 2학년들 방에 따라갔다가 밤새 괴담이야기를 했었지 ... 쿠라모치는 괴담보다는 손전등을 얼굴 밑에 대고 무표정을 짓고 있는 료스케의 모습이 더 무서웠던걸로 기억했다. 그 때의 료상은 정말 무서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쿠라모치에게 사와무라가 말했다.

 

"그 때는 아직 5년차이지 않았음까. 이번에야 말로 정확히 똑같다구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야 도대체."

"4번타자, 주전포수, 주장. 6년째 여름 코시엔 진출 실패.... 딱 미유키카즈야 이야기지 않슴까!"

"......... ."

"그래서 저희는 결심했슴다. 우리라도 나서서 미유키카즈야를 지켜주자고."

 

 이 바보녀석들, 정말 그걸 믿고 있는건가. 쿠라모치는 아침의 피로가 다시 몰려오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전날 저녁 열심히 계획을 짜고 잤던 사와무라와 후루야는 의욕 넘치게 그라운드로 향했다. 오늘도 오프지만, 그래도 오후엔 미유키가 오겠지. 오자마자 상태를 확인해주겠다. 그런 의기양양한 상태였다. 후루야도 기합이 빡 들어갔는지 오라를 풍기며 그라운드를 뛰어다녔다. 그런 상태는 저녁 식사때까지 계속되어, 둘은 식당에 누가 들어올 때마다 그것이 미유키가 아닌지 빡세게 확인했다.

 

"오오 미유키 카즈야....가 아니네."

"...."

"내일 아침에 오려나."

"글쎄."

 

 저 바보 녀석들은 지치지도 않네, 쿠라모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저녁식사가 끝날 때까지 미유키는 안경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허탈해진 둘은 하루이치까지 합세해 목욕탕으로 향했다. 노곤노곤 하루의 피로를 뜨거운 물에 녹여내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카네마루가 들어왔다.

 

"사와무라, 후루야. 오늘 하루종일 주장 찾지 않았냐?"

"왔어?"

"방금 욕탕 밖에서 마주쳤는데...., 어디가!"

"가자!!!"

"....!"

 

 물기를 말리는 둥 마는둥 하고 둘은 서둘러 미유키의 방으로 달려갔다. 쿵쾅대며 계단을 올라가 선배들에게 욕을 얻어먹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중요한건 미유키의 안위! 미유키의 방 앞에 도착한 둘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까까지만해도 불이 꺼져 있었는데, 이제는 창살 사이로 환하게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드디어 이틀 내내 기다렸던 미유키가 돌아온 것이다. 사와무라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쾅쾅 두들겼다.

 

"미유키!!! 미유키선배!!! 주장!!! 문 좀 열어보십쇼!!! 접니다! 세이도의 에이스를 노리는 남자, 사와무라 사와무라입니다!!"

 

 방 안에서 뭐야아, 하는 늘어진 미유키의 목소리가 났다. 다행이다, 죽지 않고 무사히 기숙사에 돌아와줬어. 감격의 눈빛을 나누는 둘 사이로 쾅하고 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야, 이렇게 시끄럽게."

"........"

".... 마스크...?"

 

이틀만에 얼굴을 보는 미유키는 찌뿌둥한 얼굴에 감기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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