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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난 단거 싫어해
화이트데이. 다섯글자만으로도 설레이는 연인들의 이벤트. 에이준은 조심스럽게 가판대 앞에 섰다. 푸딩을 사러 다녀온다는 핑계로 나온 잡화점의 가판대는 알록달록한 사탕으로 가득했다. 미유키가 무슨 맛을 좋아하는지는 모른다. 에이준은 무작정 언젠가 맛있다고 생각했던 사탕 다섯개를 한 손에 움켜지고 누가 볼새라 도망쳐 돌아왔다. 그 일이 어제. 그리고 오늘, 화이트데이 당일 방과 후. 에이준은 비장한 마음으로 2학년 B반 교실을 찾았다. 미유키가 조금 늦을 거라는 이야기를 쿠라모치에게 듣고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하며 세 계단씩 성큼성큼 딛고 올라가 도착한 B반 앞. 기세좋게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혼자일 줄 알았던 미유키에게는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미유키군! 이거 받아줘!"
한 3초만 더 늦었어도 큰일날 뻔 했다. 고백의 순간에 눈치없에 등장한 후배가 되는건 아닌가 싶어 벌렁벌렁한 가슴을 누르며 에이준은 벽에 밀착했다. 아아 역시, 그럼 그렇지. 미유키는 잘생겼으니까, 고백 받아도 이상할게 없지. 에이준은 새삼 손에 쥔 사탕이 부끄러워졌다. 귀여움이라곤 단 한구석도 없는 야구부 후배와 귀여운 동급생의 고백. 보나마나 결과가 뻔했다. 시무룩해진 에이준이 벽에서 떨어졌던 그 때.
"미안."
미안하다는 감정이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미유키가 그렇게 말했다.
"난 단거 싫어해."
그 말에 에이준은 다시금 손에 쥐고 있는 사탕을 바라보았다. 단걸 싫어한다고? 그야 물론 미유키가 단 걸 먹는걸 단 한번도 본적이 없긴 했다. 시합 때 긴장을 풀기위해 선배들이 이따금씩 껌이나 사탕을 입에 물고 있을때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었지.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한 자신이 더 이상했다. 어떡하지, 이 사탕 어떡하면 좋지.
탁탁탁 뛰는 소리가 나더니 뒷문이 열리고 여학생이 뛰쳐나왔다. 얼굴 한 쪽을 가리고 금새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에이준은 그 여학생에게서 왠지 모를 유대감을 느꼈다. 여학생의 손에는 예쁜 포장지의 사탕이 들려있었다. 그 여학생의 사탕도,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사탕도. 목적지는 같았지만 결국 그 손에 들어가는 일은 없겠지. 에이준은 복잡한 기분으로 돌아섰다. 사탕은 친구들이랑 나눠먹고 연습이나 해야지. 그렇게 돌아서는 에이준을 누군가 불러세웠다.
"어이, 사와무라."
"....?!"
"2학년 교실까지 무슨 일이야?"
"어, 어떻게 제가 여기 있는걸 알았어요?"
어느새 뒷문 가까이 미유키가 다가와있었다. 여학생을 바라보느라 그가 다가오는걸 모르고 있었나보다. 언제나처럼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미유키는 에이준의 머리를 푹 눌렀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이 머리는 누구거게요~?"
"이익, 그만 하십쇼!"
"오, 사탕."
손을 쳐낸다는게 그만 사탕을 흩뿌리고 말았다. 사방으로 날아가는 사탕 중에 하나를 미유키가 재주 좋게 받아냈다. 바보같은 실수를 저지른 에이준은 얼굴이 새빨개져 떨어진 사탕을 회수하기에 바빴다. 다 줍고, 남은건 미유키 손에 들려있는 하나.
"나 주는거야?"
"선배는 단거 싫어하잖아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지고 말았다. 여전히 귀 끝이 뜨겁다. 미유키는 에이준의 그 말에 호오, 하더니 조심스럽게 사탕의 포장을 벗겼다. 바스락 바스락 하는 소리가 나고, 곧 초록색의 동그란 알사탕이 미유키의 손바닥에 미끌어졌다. 메론 맛이려나, 아니면 사과?
"응, 난 단거 싫어해."
"그, 그러면...."
돌려주세요. 그 말을 하려는 순간, 미유키가 사탕을 입에 쏙 집어넣었다.
"그래도 네가 주는건 받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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